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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1호 30면


황규관

……뜻은 내 것이 아니었고
꾸었던 꿈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지나온 길 위에 남긴 흔적에
왜 가슴은 식을 줄 모르는가
멈추자 해도 가야 하고
머물자 해도 떠나야 하는데
왜 설렘이고 번민인가
바람이고 생명인가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삶창 2020)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엄습했습니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불안. 한참 전에 지나온 갈림길에서 반대로 들어야 했을까 하는 후회. 다시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 의심과 혼란. 하지만 길이 확실하게 잘못되었음을 알 때까지 얼마간 더 걸어야 합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물을 사람도 없으므로 헤매는 이의 발걸음은 오히려 빨라지는 법입니다. 미로 같은 길에 얽혀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해도 혹은 끝끝내 길 없음이라 적어놓은 푯말을 본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모르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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