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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우리의 천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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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30면

우리의 천국
박서영

기분 좋을 때 염소의 눈은 수직에서 수평이 된다. 그때 날아가버린 어린 새가 돌아와 뿔에 앉는다. 아가의 맨발 같은 것. 염소의 수염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그것은 구름 같은 것. 멀리 있는 천국에 대해 말할 땐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채송화 같은 것. 조금만 몸을 구부리면 아주 가까이 있다. 채송화를 들여다볼 땐 아픈 폐 속의 구름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것 같다. 그것은 그리움. 흔들리며 번식한다. 흙 속 깊이 발을 묻고 자라는 우엉 같은 것. 깊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달콤한 지옥에 빠져드는 나비 같은 것. 내 것이 분명하다. 날개가 있어 먼 곳의 달을 만질 수 있고 그런 주술은 어머니의 것. 그것은 오래되었다. 참새들에게 호랑가시나무 덤불이 천국이듯 우리의 겸손한 천국도 갸륵한 슬픔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를 울게 한다. 그것은 먼 곳에 있고 가질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내 몸속에 있다. 수평의 먹줄을 튕기며 번지는 기억. 시간이 벗어두고 간 외투는 잘 보관하기로 하자.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걷는사람 2019)

우리라는 말은 다정합니다. 우리 엄마나 우리 신랑처럼 더없이 친밀한 관계에서 곧잘 쓰입니다. 동시에 우리라는 말의 품은 넓습니다. 나와 상대가 서로 팔을 뻗어 둥글게 모이는 듯합니다. 우리 반이나 우리 학교가 그렇고 우리 동네나 우리 고향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리라는 것이 마치 깊은 강이나 높은 장벽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소외감도 뒤따를 것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숱한 우리들을 한 번쯤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중요한 사실은 경직되거나 닫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정하고 친밀했던 우리는 어느새 쇠창살이 죽죽 그어진 우리로 변할 것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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