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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빛났던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이규도 별세

중앙일보

입력

13일 별세한 소프라노 이규도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국의 대표적 프리마돈나였다. 중앙포토

13일 별세한 소프라노 이규도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국의 대표적 프리마돈나였다. 중앙포토

한국의 대표적 프리마돈나 이규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13일 별세했다. 84세.

고인은 1960년대부터 스타로 떠오른 소프라노였다. 열 살에 KBS어린이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는 이화여대 음대 성악과 재학시절인 1962년 동아콩쿠르에서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을 부르며 전체 대상을 받았다. 1970년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뉴욕 아메리칸 오페라 센터의 단원으로 발탁돼 뉴욕 무대에서 주역으로 노래했다.

경력에서 결정적 장면은 1971년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의 마스터 클래스다. 무대에서 은퇴한 만년의 칼라스가 줄리아드 음대의 제안으로 12주 공개 레슨을 열었다. 칼라스의 명성에 300명이 지원했고 그 중 25명이 선발돼 칼라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규도 교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인은 바리톤 김성길(83)까지 두명이었고, 고인은 이 공개 레슨에서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노래를 불렀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마스터 클래스 이후 칼라스가 나에게 ‘내 학생’이라며 가르친 기억이 있다”고 했다. 줄리아드 재학 시절 오페라에서 ‘라보엠’ 미미 역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참관하던 칼라스가 무대에서 연습하던 고인에게 ‘내 학생’이라며 레슨을 해줬다는 일화다. 이 교수는 칼라스가 남긴 조언 중 ‘작곡가가 원하는 박자를 지키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후 그는 ‘나비부인’의 ‘초초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74년 미국 디트로이트 오페라단에서 초초상을 맡은 후 미국을 중심으로 70여차례 같은 역할을 했다. 한 해 6편의 오페라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특히 국내 공연에서는 많은 청중을 모으기로 유명했다. 프랑스 앙주 국제 콩쿠르, 벨기에 베르비에르 국제 콩쿠르, 스페인 빌바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국내 오페라 무대에는 도미 전인 1968년 ‘마농 레스코’로 데뷔했다. 오페라 무대를 넘어 국가의 주요 행사에서도 노래하며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가곡의 밤’과 같은 TV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는 성악가였고, 1974년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에서 노래했다. 1985년에는 남북예술단 상호방문 때 평양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같은 북한이 민감해 하는 가사가 있었지만 그대로 불렀다. 이 교수는 6ㆍ25 전쟁 때 평안남도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다.

1976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한 후에도 스타 교수였다. 강의를 신청하는 학생이 몰려 수강 정원을 두 배로 늘렸다. 제자들과 ‘프리마돈나 여성 합창단’을 만들어 일흔 넘어까지 미국ㆍ러시아에서 공연도 했다. 2017년에는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로 자리잡으며 온라인 성악교육에 힘썼다. 주부, 직장인 같은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레슨이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의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한민국 예술원상도 수상했고, 2021년 대한민국 예술원의 회원이 됐다. 같은 세대로 음악활동을 함께 했던 신수정 예술원 회장(피아니스트)은 “우리 시대의 가장 빛나는 프리마돈나였다. 특유의 드라마가 있는 노래에 모두가 매혹됐다”고 기억했다.

남편 고(故) 박정윤 전 한양대 음대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음악원에서 수학한 피아니스트로 2014년 별세했다. 유족은 아들 박상범씨가 있다. 빈소는 세브란스 병원 특실이며 조문은 15일 오전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8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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