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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완탕면, 그 심오한(?) 역사와 풍속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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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탕면

완탕면

완탕면은 우리한테 아주 익숙하지는 않지만 크게 낯선 음식도 아니다. 요즘 한국의 딤섬 전문점에서도 심심치 않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대만에서 퍼진 음식으로 원래는 중국 광둥 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족 같지만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음식을 설명하자면 떡과 만두로 끓인 우리 떡만둣국처럼 완탕면은 국수와 물만두를 함께 먹는 일종의 만두 국수다. 국수 없이 물만두만으로 끓이면 그냥 완탕이라고 한다.

완탕면, 알고 보면 조금 헷갈리는 중국 음식이다. 일단 음식 이름부터 그렇다. 면(麵)은 국수가 확실하지만 완탕은 정체가 불투명하다. 얼핏 뜨끈한 국물(湯)을 나타내는 말 같지만 실은 작은 만두인 물만두를 가리키는 단어다. 한자를 보면 더욱 혼란스럽다. 구름 운(雲), 삼킬 탄(呑) 자를 쓰고 중국 남부 방언으로 완탕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광둥 성에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하는 것 같다.

구름을 삼킨다는 뜻의 완탕, 다소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뜬금없는 이름인데 여기에는 예상을 벗어나는 역사가 있다.

흔히 완탕을 광둥 성에서 생겨나 발달한 딤섬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북경을 비롯한 중국 북방에서 전해진 음식이다. 그런 만큼 화북과 화동
지방에서도 많이 먹는데 다만 완탕이라는 이름 대신 주로 훈툰(餛飩)이라고 부른다. 우리말 발음으로는 혼돈이다.

훈툰의 원래 이름은 엉뚱하게도 어지럽다, 혼란스럽다는 뜻의 혼돈(混沌), 중국 말 훈듄이었다고 한다. 만두가 오랑캐 머리라는 뜻에서 만두(蠻頭)라고 했다가 음식 이름으로는 '거시기' 해서 만두(饅頭)로 바뀐 것처럼 훈둔(混沌) 역시 음식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훈툰(餛飩)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어 남방으로 전해지면서 현지 발음으로 완탕으로 부르다 아예 글자까지 바뀌어 구름을 삼킨다는 뜻의 완탕이 됐다고 한다.

완탕은 이름뿐만 아니라 음식 자체의 역사도 뜻밖이다. 우리나라에는 홍콩식 딤섬으로 비교적 뒤늦게 알려졌지만 역사가 깊은 음식으로 완탕의 원조가 되는 훈툰은 사실상 중국 만두의 조상쯤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만두라는 음식 이름이 역사 문헌에 실제로 보이는 것은 제갈공명이 살았던 3세기 무렵이다. 하늘의 노여움으로 거칠어진 강물의 풍랑을 다스리기 위해 제갈량이 오랑캐 머리 대신 만두를 빚어 제사를 지냈다는 삼국지 속 이야기와 시기와 겹친다.

반면 훈툰은 훨씬 이전의 문헌에 보인다. 1세기 초 한나라 때 쓰였다는 사전인 『방언(方言)』에 나온다. 밀가루 음식(餠)을 훈(餛)이라 부른다고 했는데 후대 학자들은 이 음식이 바로 훈툰이라고 풀이했다. 참고로 1세기 무렵의 훈툰은 지금의 물만두인 훈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경단 훈(餛) 경단 돈(飩)의 글자 뜻 그대로 곡식 가루를 뭉친 경단 덩어리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어쨌든 2,000년 전의 옛날 중국에서는 왜 작은 만두를 혼란스럽다는 뜻의 혼돈, 밀가루 덩어리라는 뜻의 훈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을까? 관련해서 전해지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청나라 말의 세시풍속서인 『연경세시기』에서는 훈툰의 형태가 계란과 닮았는데 천지의 혼란스러운 상태와 비슷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밀을 포함한 곡식 가루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둥글게 경단 형태로 정리한 것이 훈툰인 만큼 1세기 무렵 초기 만두의 모습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다른 풀이도 있다. 1세기는 실크로드가 열리며 서역에서 중원으로 다양한 밀가루 음식이 전해졌던 시기다. 훈툰도 이때 서역에서 들어온 음식으로 훈툰(huntun)이라는 서역의 이름이 중국어로 음역 되면서 혼돈(混沌) 혹은 훈툰(餛飩)이라는 음식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훈툰을 중국에 전해진 최초의 만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한테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만두지만 완탕에서 이어지는 훈툰은 뿌리가 깊은 만큼 소가 없는 만두인 만터우와 교자 만두, 포자만두 등과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는 상당히 널리 퍼졌던 음식이다. 문헌 기록으로 보면 당송 시대에는 오히려 다른 만두보다 더 많이 먹었던 듯싶다. 당나라 문헌 『유양잡조』에 다양한 이름의 훈툰이 보이는 것을 비롯해 송나라 『무림 구사』에는 도시 사람들은 동지를 중하게 여기는데 이날이면 모두 훈툰을 먹는다고 했다. 역시 송나라 문헌인 『동경몽화록』 『몽양록』 등에도 새해가 되면 시장에서 훈툰을 판다는 기록이 보인다.

청말의연경세시기에서도 동짓날이면 훈툰 먹는 것이 북경 지방의 풍속이라면서 지난해의 혼돈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되는 한 해를 맞으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뿌리 깊은 음식인 만큼 진작부터 명절 음식으로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중국 사람한테 한국은 동짓날 팥죽을 먹는데 중국에서는 무엇을 먹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교자 만두를 먹는다고 대답한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완탕, 즉 훈툰의 역사와 관련 풍속을 알아보니 실은 작은 만두인 훈툰이 동지 음식이었는데 현대에 들어 교자로 대체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단순한 딤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줄 알았던 완탕면 한 그릇에 중국 만두의 역사와 풍속이 녹아 있었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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