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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수화의 마켓 나우

혼합현실, 인간의 ‘왜곡’ 체험 한계 넓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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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수화 한림대학교 AI융합연구원 연구교수

이수화 한림대학교 AI융합연구원 연구교수

애플이 비전 프로를 1월 19일 출시했다. 헤드셋으로 시선추적 기능과 몰입감을 제공하여 혼합현실(MR) 시장에서 새 기준을 제시하려는 승부수다. 시장 평가는 복합적이다. 헤드셋의 무게감, 어지러움, 메스꺼움에 대해서는 반응이 부정적이다.

MR은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를 결합해 새로운 환경과 시각적 표현을 생성하는 기술이다. 사용자는 두 세계에서 가상 객체를 혼합해 보거나, 두 세계 환경이 결합한 공간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다.

메타 CEO 저커버그는 지난 2월 말 방한해 LG와 확장현실(XR) 기기 공동개발을 논의했다. XR은 MR·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다. 사실 메타의 VR 사업부문인 리얼리티 랩스는 2021년 102억 달러(약 13조3800억원), 2022년 137억 달러(약 18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메타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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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이나 XR이 참조할만한 선례가 15년 전 있었다. 글로벌 TV 시장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안경을 쓰고 보는 깊이 지각 3D TV를 각각의 정교한 방식으로 상용화했다. 시장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사람들은 놀라운 몰입감보다 안경 착용의 불편함에 더 민감했다.

어제의 실패와 오늘의 도전 사이에 중대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생성형 인공지능(GAI) 혹은 자연언어이해기술이다. GAI를 말할 때 대부분 매체와 애널리스트들이 놓치는 핵심이 있다. 인간의 세상 인식은 물리적 세계를 사진 찍어 머릿속에 저장하는 과정이 아니다. 인간은 감각적으로 필터링된 정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각종 착시와 착각이라는 오류와 더불어 물리 세계에 없는 상징인 언어·문자·기호를 그 정보에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문화적 맥락을 얹어 머릿속에 저장한다. 같은 세상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지각하여 기억한다.

철학자 후설(1859~1938)의 현상학, 하이데거(1889~1976)의 존재론은 MR과 흡사한 점이 있다. 그들은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지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둘의 성찰은 MR과 밀접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순수하게 주관적이며, 우리의 인식과 해석을 통해 형성되는 왜곡이다. MR은 현실을 기억과 혼합하는 왜곡이다.

인간의 왜곡된 세상 인식과 MR 사이의 유사성을 인지하는 것은, 인간에게 보다 넓은 세상 인식의 가능성을 선물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다. 왜곡된 각자의 기억을 다시금 꺼내서 타인의 헤드셋에 보여줄 때, 기억의 주체인 나조차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세계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 공유를 위한 대장정에서 우리 기업들과 애플·메타가 어떤 기여를 할지 주목된다.

이수화 한림대학교 AI융합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