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사장단의 「공염불」/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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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5개 증권사 사장단은 업계의 크고 작은 현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만난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업계의 고충을 서로 털어놓고 필요한 경우 자율결의 형식을 빌려 회의내용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결의사항은 제대로 지켜진 예가 드물다. 공수표만 남발하고 있는 셈이다.
적자점포 통폐합이나 임금동결,담보 부족계좌(속칭 깡통계좌) 일괄 정리결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증권사 사장단은 지난 8월10일 증시침체로 심화되는 경영난을 덜기 위해 기존 점포 가운데 10%인 53개를 내년 2월까지 폐쇄하겠다고 공언했다.
증권감독원은 업계의 이같은 결의에 따라 지난달 정리기준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같은 자율결의는 사실상 백지화 됐다. 증권사가 새로 생기는 마당에 기존사들의 점포 몇개를 줄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적자점포 정리와 함께 사장단은 올해 임금을 동결키로 했으나 이 역시 이미 물 건너간 얘기가 되고 말았다.
호황때 특별보너스를 적잖이 지급했듯이 적자 경영때는 임금을 묶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논리였으나 노조측의 거센 반발에 밀려 각사가 모두 5% 인상으로 타결을 지은 상태다. 당초부터 「결의」에 문제가 있었다.
사장단들은 또 지난 9월8일에는 깡통계좌를 몽땅 정리키로 하고 10일 이를 강행했으나 내부적으로는 편법 구제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결과 실제 정리된 물량은 전체 대상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사장단은 자율적인 의사결정의 이행여부를 놓고 외부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증권업계의 진정한 자율화를 위해서는 사장단의 약속,그것도 대외적으로 공표된 것은 정부의 지시보다 훨씬 잘 지켜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내년부터 증권업이 대내외적으로 개방되는 점을 감안할 때 업계의 자율통제기능은 한층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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