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뇌에 3D 프린터로 회로 입히고, 뇌-컴퓨터 연결에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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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기업 뉴럴링크는 일본 SF영화 ‘공각기동대’처럼 컴퓨터 속 데이터를 인간의 두뇌에 이식하는 등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연구·개발한다. 사진은 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구상을 형상화한 그래픽이다. 중앙포토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기업 뉴럴링크는 일본 SF영화 ‘공각기동대’처럼 컴퓨터 속 데이터를 인간의 두뇌에 이식하는 등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연구·개발한다. 사진은 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구상을 형상화한 그래픽이다. 중앙포토

인간 뇌 속의 기억 등 정보를 컴퓨터로 옮기고, 또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뇌 속으로 이식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일본의 대표적 공상과학(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는 인간의 뇌가 기계장치, 즉 컴퓨터와 연결돼 정보가 오가고, 이런 ‘전뇌(電腦) 인간’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시대를 그리고 있다. 황당한 상상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 발명가 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2045년이면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에 무선으로 연결해 지능을 10억 배 증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2016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는 공각기동대와 커즈와일의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스타트업이다. 뉴럴링크는 실제로 지난 2월 인간의 뇌에 컴퓨터 장치를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의 마우스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 Computer Interface)는) 연구는 한국도 빠질 수 없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뇌 조직처럼 부드러운 인공 신경 전극을 쥐의 뇌에 이식하고, 3D(차원) 프린터로 전자회로를 두개골 표면에 인쇄해 뇌파(신경 신호)를 장기간 송·수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연구는 나노의학 연구단 천진우 단장(연세대 특훈교수)·박장웅 교수(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정현호·장진우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했다.

뇌에 삽입되는 액체금속 기반의 부드러운 신경전극과, 두개골 표면을 따라 얇게 형성되는 전자회로를 설명하는 그림(왼쪽) 두개골 곡면을 따라 형성된 생체통합적 통신 전자회로의 사진(오른쪽). [사진=IBS]

뇌에 삽입되는 액체금속 기반의 부드러운 신경전극과, 두개골 표면을 따라 얇게 형성되는 전자회로를 설명하는 그림(왼쪽) 두개골 곡면을 따라 형성된 생체통합적 통신 전자회로의 사진(오른쪽). [사진=IBS]

BCI는 뇌파를 통해 외부 기계나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 적용하면 자유롭고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어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다.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감지하는 삽입형 신경 전극과 감지된 신호를 외부 기기로 송수신하는 전자회로는 BCI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유사한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딱딱한 금속과 반도체 소재로 이뤄진 전극과 전자회로를 사용해 두뇌이식 때 이질감이 크고, 부드러운 뇌 조직에 염증과 감염을 유발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뇌에 발생한 손상이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방해해 장기간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개발된 BCI 장치들은 뇌질환 말기 환자들 치료를 위한 최후의 수단 정도로만 여겨졌다.

연구진은 고형의 금속 대신 뇌 조직과 유사한 부드러운 갈륨 기반의 액체금속을 이용해 인공 신경 전극을 제작했다. 제작된 전극은 지름이 머리카락의 10분의 1 수준으로 얇고, 젤리처럼 말랑해 뇌 조직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두개골 곡면에 따라 전자회로를 얇게 인쇄한 뒤 뇌에 이식했다. 이렇게 구현한 BCI는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얇아 마치 문신처럼 이식 후에도 두개골 외관에 차이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가 2020년 8월 자신의 스타트업 뉴럴링크에서 칩 이식을 설명하면서 공개한 자료와 칩의 실제 모습. [AFP=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일론 머스크가 2020년 8월 자신의 스타트업 뉴럴링크에서 칩 이식을 설명하면서 공개한 자료와 칩의 실제 모습. [AFP=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연구진이 구현한 인터페이스(연결 매개체)는 여러 개의 신경 전극을 이식할 수 있어 다양한 뇌 영역에서의 신호를 동시에 측정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뇌 구조에 맞춰 맞춤형 설계도 가능하다. 나아가 유선 전자회로를 사용한 기존 기술과 달리 무선으로 뇌파를 송·수신할 수 있어 환자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쥐 모델을 활용한 동물실험에서 체내 신경신호를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딱딱한 고체 형태인 기존의 인터페이스로는 신경신호를 1개월 이상 측정하기 어려웠다.

연구를 이끈 박장웅 교수는 “뇌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33주 이상 신경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며 “파킨슨병·알츠하이머·뇌전증 등 다양한 뇌질환 환자 및 일반 사용자에게 광범위하게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인류의 BCI 연구는 아직은 뇌파를 아날로그 파장으로 읽어들이는 수준이지만, 머잖아 구체적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송·수신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최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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