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병 뚜껑이 일장기"…中최대부자도 당한 애국주의 불매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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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색풍 논란에 휩싸인 중국의 대표 생수 눙푸산촨의 포장. 붉은색 페트병 뚜껑은 일장기의 붉은 태양, 포장의 산은 후지산을, 또 다른 제품의 포장에 일본의 5층탑을 인쇄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주장했다. 그들은 눙푸산촨이 “일본에 아첨하는(媚日) 기업”이라며 불매운동을 선동했다. 홍콩명보 캡처

왜색풍 논란에 휩싸인 중국의 대표 생수 눙푸산촨의 포장. 붉은색 페트병 뚜껑은 일장기의 붉은 태양, 포장의 산은 후지산을, 또 다른 제품의 포장에 일본의 5층탑을 인쇄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주장했다. 그들은 눙푸산촨이 “일본에 아첨하는(媚日) 기업”이라며 불매운동을 선동했다. 홍콩명보 캡처

중국의 생수 및 음료 제조기업인 눙푸산촨(農夫山泉)이 민족주의 성향의 네티즌 공격에 대규모 불매운동에 휩싸였다. 최근 중국에 만연한 애국주의 정서가 중국 시장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화권 매체 등에 따르면 중국의 애국주의 네티즌들은 눙푸산촨이 일본을 미화하는 왜색 포장을 했으며, 창업자 중산산(鐘睒睒·70)의 아들이 미국 국적자인 데다, 최근 숨진 민족주의 성향의 경쟁업체 창업자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다는 등의 이유로 불매를 선동했다. 세계 최대의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BYD)의 창업주 왕촨푸(王傳福·58)도 혼외 사생아가 원정출산으로 미국 국적을 소지했다는 실명 고발까지 당했다. 지난달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莫言)을 친일 혐의로 고발하는 네티즌도 등장했다.

지난 8일 중국 장쑤성의 한 편의점이 내건 친일 제품에 대한 판매를 중단한다는 공지문. 바이두 캡처

지난 8일 중국 장쑤성의 한 편의점이 내건 친일 제품에 대한 판매를 중단한다는 공지문. 바이두 캡처

“오늘부터 눙푸산촨의 모든 제품의 판매를 중단합니다. 매장에서 모든 국가의 제품을 판매하지만, 일본에 아첨하는(媚日) 행위를 한 중국 기업의 상품은 팔지 않습니다.”

지난 8일 중국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시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내건 공지문이다. 눙푸산촨 제품 판매를 중단한다는 공지문에 중국 SNS가 들끓었다. 12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일본계 브랜드인 세븐일레븐를 도입한 중국 합작사인 ‘장쑤 7-11’는 해당 매장 점원의 개별행위일 뿐 본사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중국의 대표 생수업체 눙푸산촨의 자매 제품인 차파이(茶π)의 상품명이 일본 신사를 닯았다는 주장에 휩싸였다. 바이두 캡처

중국의 대표 생수업체 눙푸산촨의 자매 제품인 차파이(茶π)의 상품명이 일본 신사를 닯았다는 주장에 휩싸였다. 바이두 캡처

이번 불매 운동은 중국 최대의 음료 제조업체인 항저우 와하하(娃哈哈) 창업자 쭝칭허우(宗慶後)가 지난달 25일 숨지면서 불붙었다. 네티즌들은 와하하의 대리상이었던 중산산이 눙푸산촨을 창업하면서 비윤리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등 배은망덕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공격에 나섰다.

비난은 곧 애국주의 논란으로 번졌다. 중산산의 아들이 미국 국적 소지자라고 공격한 데 이어, 한국 가수 빅뱅의 지드래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음료 차파이(茶π)가 일본 신사(神社)의 겉모양과 닮았다고 공격했다(사진). 또 다른 음료 제품 둥팡수예(東方樹葉) 포장은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센소지(淺草寺) 5층탑을 인쇄했으며, 대표 상품인 생수 페트병의 붉은색 뚜껑이 일장기의 붉은 원을 상징하고, 병 포장에 인쇄된 산은 후지산이라며 왜색 논란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중산산 회장은 변호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그는 지난해 중국판 포브스로 불리는 후룬 연구소가 발표한 중국 부호 랭킹에서 자산 4500억 위안(약 82조원)으로 3년 연속 중국 최대 부호에 오른 인물이다.

애국주의 유튜버의 공격은 중국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비야디 창업자 왕촨푸도 피하지 못했다. 지난 9일 중국의 자동차 애호가 커뮤니티인 쑹싼지처(鬆散機車)를 설립한 장샤오레이(張小雷)가 실명으로 왕촨푸 BYD 회장의 불륜을 고발했다. 그는 왕 회장이 사내 여성 임원과 혼외 불륜을 저질렀으며 사이에서 태어난 두 명의 사생아 모두 원정출산으로 미국 국적을 소지한 상태라고 폭로했다. 이들이 이미 비야디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수백만 비야디 소유주의 개인정보와 운행 데이터가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트래픽으로 이익을 얻는 애국주의 인플루언서의 사냥감은 기업가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마오쩌둥을 숭배하는 한 유튜버가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모옌의 작품 『붉은수수밭』이 일본의 중국 침략을 미화했다며, 금서 지정과 공개 사과,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기소문을 사법기관에 정식 제출하는 해프닝을 벌여 화제가 됐다.

거침없는 애국주의 공격에 중국 최대 부호와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주,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속수무책이지만 중국 당국은 어정쩡한 태도로 개입을 피하고 있다. 중국 정치권 동향에 밝은 홍콩 성도일보는 지난 11일 “애국주의 기치가 주선율(당국의 정책 기조)에 부합하며, 기본적으로 돈을 벌 수 있고 손해는 보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민영기업의 피해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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