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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하는 中 애국주의…노벨문학상 수상작가까지 친일로 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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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 EPA=연합뉴스

중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 EPA=연합뉴스

중국의 한 애국주의 블로거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모옌(莫言·69)에게 친일 혐의가 있다고 그를 고소했다. 중화권 언론매체는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중국인이 세계와 차단된 방화벽에 갇혀 나라의 발전을 막는 파괴적인 역량으로 전락했다”며 폐해를 지적했다.

모옌 고소 해프닝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 애국주의를 앞세워 21만 팔로워를 보유한 아이디 ‘진실을 말하는 마오싱훠(說眞話的毛星火, 이하 마오)’가 주도했다. 마오는 지난달 27일 “모옌은 영웅 선열을 먹칠한 혐의가 있으며, 영웅선열법을 위반했다”며 법원에 제출한 A4 4장 분량의 고소장을 공개했다.

마오는 고소장에 모옌이 소설 『붉은수수밭(紅高粱家族)』과 『풍유비둔(豐乳肥臀)』에서 일본의 중국 침략을 미화했고, 마오쩌둥 주석을 모욕했다는 등의 26개의 ‘범죄 증거’를 열거했다. 아울러 법원에 모옌의 작품을 일반 서점에서 판매를 금지하고, 사과와 함께 15억 위안(2769억원)을 배상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모옌을 기소하자는 주장은 단숨에 중국 SNS에서 화제가 됐다. 그는 온라인 투표에서 만 여 명의 지지자를 확보했다며 “압도적 승리”를 주장했다.

아이디 ‘진실을 말하는 마오싱훠’라는 중국 블로거가 지난달 28일 웨이보에 노벨수상작가 모옌을 기소했다며 올린 기소 접수증(왼쪽)과 이를 비판한 후시진(오른쪽) 전 환구시보 편집인까지 기소를 주장했다. 연합조보 캡처

아이디 ‘진실을 말하는 마오싱훠’라는 중국 블로거가 지난달 28일 웨이보에 노벨수상작가 모옌을 기소했다며 올린 기소 접수증(왼쪽)과 이를 비판한 후시진(오른쪽) 전 환구시보 편집인까지 기소를 주장했다. 연합조보 캡처

논란이 확산되자 중국의 대표적인 국수주의 논객인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편집인까지 애국주의 네티즌을 비판하고 나섰다. 후시진 전 편집인은 27일 SNS에 “노벨문학상이 모옌의 ‘원죄’가 됐다”는 글을 올려 “기소자가 트래픽을 짜내기 위한 소동임을 다들 알면서도 버젓이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개탄했다. 후 전 편집인은 “중국사회는 옳고 그름에 각성이 필요하다”며 “모옌 기소는 (중국 사회의) 폐쇄와 수축, 극단화된 ‘정치적 올바름’, 당이 영도하는 헌법질서 아래의 관용과 자유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마오는 28일 “법에 따라 행동하는 애국 인민을 국수주의자라 모욕했다”며 후시진까지 고소하겠다고 주장했다.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은 후시진 고소를 주장한 마오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 마오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웨이보 팔로워 430만명을 보유한 모옌은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8월 이후 SNS에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관영 매체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법원 등 사법 기관도 실제 조사 착수 여부 등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화권 매체는 중국 내 과도한 애국주의 열풍이 빚은 해프닝이라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중국어 신문 연합조보는 지난 1일 “어려서부터 애국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중국인이 하나의 여론환경에 갇혀 자기가 자기에게 납치당한 정보의 누에고치에 납치된 집단이 됐다”며 “나라의 전진을 막거나 파괴하는 역량이 됐다”고 사태를 비판했다.

홍콩의 성도일보도 2일 모옌 논란을 소개하며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이번 소동이 전혀 저지받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만일 자유주의자가 이런 기소문을 발표했다면 ‘싸움을 걸고 말썽을 일으켰다’는 현행 법조문의 심흔자사(尋釁滋事) 혐의로 사법처리 당하지 않았을까?”라고 중국 당국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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