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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 좋겠네"...기업들 차등 배당, 자사주 소각은 역대급 [밸류업 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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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번주 본격 개막하는 기업 주주총회를 앞두고 기업들이 주주 환원 요구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강조하며 기업들을 압박하고, 행동주의 펀드 등 주주 연대의 요구가 거세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3월 말 열린 KT&G 주주총회 현장.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말 열린 KT&G 주주총회 현장. 연합뉴스

“소액주주에 더 준다”…‘차등 배당’ 바람

주주에 이익을 환원하는 대표적인 지표인 배당이 늘고 있다. 현대차는 역대 최대 금액인 주당 8400원(이하 보통주 기준)을 배당키로 결정했다. 전년(2022년 12월말 주주 명부 기준)보다 1조1683억원 늘린 2조9986억원을 지난해 주주들에게 배당한다. 코로나19 여파로 3년간 배당이 없었던 하나투어도 주당 5000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총 배당금은 지난해 순이익(607억원)보다 많은 774억원이다.

눈에 띄는 점은 소액주주에게 더 많이 배당하는 ‘차등 배당’이다. 교보증권, 교촌F&B, 한양증권, 한국알콜, 파세코 등 20여 곳이 차등 배당을 하겠다고 공시했다. 보통 차등 배당은 대주주가 소액주주에게 본인 몫을 양보해 소액주주가 더 많은 배당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교보증권 이사회는 최근 일반 주주에게 주당 250원을 배당하고 최대주주는 배당에서 제외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초정밀 공구를 생산하는 네오티스도 최대주주를 배당 대상에서 빼고 총 발행주식의 78%에 대해서만 주당 200원을 배당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상당수 기업에서 배당은 대주주 이익과 직결돼 있어 ‘차등 배당’은 상상도 하기 힘든데, 최근 주주 친화적인 배당 정책이 기업의 중요 화두로 부상했다는 게 실감난다”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주주가 내놓은 본인 몫만큼 일반주주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늘어나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커진다”며 “차등 배당을 통한 주주 친화 정책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자사주 소각 규모 “역대 최대”

그간 소액 주주들이 강력하게 요구한 자사주 소각도 급물살을 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 21곳(지난달 12일 기준)이 3조3148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놨다. 이는 지난해 연간 소각 규모의 69%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3934억원)과 비교하면 8.4배 수준이다. 삼성물산(1조원), 금호석유화학(1290억원), SK이노베이션(7936억원) 등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놨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창사 이래 첫 자사주 소각이다.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뛰어난 편이다.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 개선, 자본금 감소로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 등 효과가 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자사주 소각은 자사주를 매입해서 소각해버릴 만큼 기업이 재무적으로 안정됐다는 방증이어서 주주 신뢰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 당국이 자사주 보유 비중 10% 이상인 기업에 대해 자사주 보유 사유와 추가 매입, 소각‧매각 계획 등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상반기에 추진할 예정이라서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자사주 소각 규모는 4조7626억원으로 2년 새 두배 늘었는데,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관료 출신 사외이사 증가세…그중 34%는 법조인

이번 주주총회의 핵심 중 하나는 ‘경영진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사회 구성 변화다.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주목받으면서 기업 경영진을 감독하는 이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주요 기업(기업진단현황 공시 대상)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연 평균 7587건)의 99.4%는 원안 그대로 가결됐다.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사내이사를 견제할 수 있는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 주요 상장사 사외이사는 교수‧관료 출신이 상당수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이번 주총에서 국내 30대 그룹(매출 기준)이 추천한 신규 사외이사(103명)의 67%가 관료‧학계 출신이다. 2022년과 비교해 학계 출신 사외이사 비중(34.8→27%)은 줄어든 반면 관료 출신(28.7→39.8%)은 늘었다. 관료 출신의 34%는 법조인(판‧검사)이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 이사회가 주주 이익보다 경영진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기업 경영 경험이 있거나 산업 전문성이 있는 전문가들이 사외이사를 맡아 냉철한 시각으로 감독‧결정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기업들도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는 그간 ‘영업 비밀’ 보안을 이유로 꺼렸던 경쟁사 CEO 출신 사외이사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최영권 전 우리자산운용 대표를 추천했다. 하나금융지주도 이재술 전 딜로이트 안진 대표, 윤심 전 삼성SDS 부사장 등을 추천했다. JB금융지주는 사외이사 증원 인원 2명 중 1명을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가 추천한 투자전문가를 선임했다. 한국ESG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주주제안 가결률은 20.2%로 전년(5.6%)보다 확 높아졌는데 가결된 안건 대부분이 이사 해임(8.3→45.5%), 사외이사 선임(9.4→17.1%)으로 나타났다.

전규향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연구팀 차장은 “최근 배당보다 자사주 취득‧처분에 대한 주주제안 안건이 늘고 있다”며 “이는 이사회의 고도의 경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인 만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이사회 역할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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