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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권의 미래를 묻다

무어의 법칙이 끝나고 난 뒤 IT산업의 미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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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

1980년 제4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룹 샤프가 부른 노래 ‘연극이 끝난 후’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정보기술(IT) 산업의 근간에는 무어의 법칙이 있다. 그런데 무어의 법칙이 이제 서서히 끝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이 끝나고 난 뒤 IT산업은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우선 무어의 법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무어의 법칙은 집적 회로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매년 혹은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다시 말해, 집적 회로 안에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집적 회로는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 집적 회로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트랜지스터·저항·축전기 등의 각종 소자들을 모아 하나의 칩으로 만든 것이다. 참고로, 집적 회로는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던 잭 킬비가 처음 만들었다. 킬비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집적 회로의 핵심은 저항이나 축전기와 같은 일반적인 소자가 아니라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다. 고성능의 집적 회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어 주어진 공간에 최대한 많이 집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관건은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론상 회로 폭 2나노가 한계
트랜지스터 밀도 증가 장벽에
무어의 법칙 통하지 않을 전망
양자컴퓨터 등 새 대안에 주목

트랜지스터의 출현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캠퍼스에서 2022년 7월 열린 세계 최초 GAA 기반 3나노 양산 출하식에서 연구원들이 3나노 반도체 양산품을 출하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캠퍼스에서 2022년 7월 열린 세계 최초 GAA 기반 3나노 양산 출하식에서 연구원들이 3나노 반도체 양산품을 출하하고 있다. [뉴스1]

트랜지스터는 근본적으로 전기를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다. 구체적으로, 트랜지스터의 기능은 트랜지스터에 연결된 3개의 전선 중 두 전선 사이에 전류가 흐르게 할지 말지, 혹은 얼마나 잘 흐르게 할지를 나머지 세 번째 전선의 전압을 이용해 조절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트랜지스터는 수도관을 통해 들어온 수돗물이 수도꼭지를 통해 빠져나갈 때 그 양을 밸브로 조절하는 것과 같다.

원칙적으로 스위치로 쓰일 수 있는 모든 것은 트랜지스터로서 기능할 수 있다.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진공관이 트랜지스터의 역할을 대신 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애니악은 진공관을 이용해 연산을 수행했다. 하지만 진공관은 여러 심각한 문제점을 지녔다. 진공관은 크기가 크고, 수명이 짧고, 감전의 위험이 크며, 노이즈가 많다. 이 모든 문제점을 한 방에 해결한 것이 바로 반도체에 기반을 둔 트랜지스터다.

반도체는 무엇인가? 반도체는 문자 그대로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와 거의 통하지 않는 절연체 사이의 물질을 뜻한다. 반도체의 대표적인 예는 실리콘이다. 순수한 반도체는 전기를 잘 통하지 않지만 불순물을 주입, 전문적으로 도핑하면 전기를 잘 통하게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순수한 반도체가 전기를 잘 통하지 않는 이유는 고체 속에서 전자가 흐를 수 있는 통로, 전문적으로 ‘에너지띠’가 전자들로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병목 현상이다. 도핑은 꽉 막힌 통로에서 전자를 조금 빼내거나 주변에 새로운 통로를 뚫는 역할을 한다. 정리하면, 반도체는 도핑을 통해 전류가 흐르는 정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반도체의 성질을 잘 이용하면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트랜지스터를 처음 개발한 공로로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트랜지스터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알았으니, 이제 다시 집적 회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집적 회로는 웨이퍼라고 불리는 반도체 기판을 미세하게 깎아, 얇은 전선들의 정교한 패턴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수많은 트랜지스터와 제반 회로를 구현한 것이다. 결국, 집적 회로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전선의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 차세대 반도체로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2나노 반도체는 이 전선의 두께가 2nm(나노미터)라는 뜻이다. 참고로, 1nm는 10억 분의 1m다.

IT 산업의 새 지평

무어의 법칙은 전선의 두께를 줄이는 기술이 지금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더이상 전선의 두께를 줄일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다. 나노미터 이하로 전선의 두께를 계속 줄이면 전선은 원리적으로 더이상 그 안에 전자를 가둘 수 없기 때문이다. 미시 시계에서 전자는 양자터널링을 통해 인접한 전선 사이를 마치 유령처럼 옮겨 다닐 수 있다. 만약 무어의 법칙이 정말 완전히 끝나버리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성능은 더이상 향상되지 않을 것이고, IT 산업은 성장을 멈출 것이다. 대재앙이다.

대재앙을 막을 여러 방법이 고안되고 있다. 우선, 3차원 적층 방법이 있다. 이것은 마치 도시에서 토지가 부족하면 높은 건물을 짓듯이 집적 회로를 3차원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미 고대역폭 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에서 쓰이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전자의 고유 성질인 스핀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 및 처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의 이름은 스핀트로닉스다. 그 외에 특정 기능에 특화된 집적 회로를 설계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의 예는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 칩이다. 마지막으로, 아예 양자역학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컴퓨터, 즉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무어의 법칙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새로 시작될 연극들이 화려하게 준비되고 있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