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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분위기로 착각말라/전 전대통령의 하산소식을 듣고(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사저로 곧 돌아올 모양이다. 우리는 이 소식에 착잡한 심경을 느끼면서 전씨 자신과 그 추종세력에 우려반,경계반의 마음으로 몇 가지 당부하지 않을 수 없다.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전씨와 핵심추종세력들은 전씨의 25개월 백담사 은둔으로 5공 시대의 과오와 비리가 충분히 씻겨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절대권력자였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생활환경을 바꾸어 자숙의 태도를 보였다는 면에서는 국민들이 여러 갈래의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은 전씨에 대해 많은 의혹과 경계하는 마음을 여전히 품고 있다. 5공 청산은 정치적으로만 매듭지어졌을 뿐이라는 차가운 시선 또한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전씨와 5공 핵심세력에 대한 역사의 단죄가 미흡하지 않았나,또 그의 속죄하는 모습엔 진심이 실려있지 않은 게 아니냐는 아쉬움과 의구심을 국민들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의 하산설이 나왔을 때마다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했고,특히 사저복귀설에 강한 반발이 있어 왔던 그간의 사정이 이를 잘 대변한다.
우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연희동 사저복귀를 굳이 문제삼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산에 즈음해서 그에게 자숙을 요구하는 몇 가지 단서를 달고사 한다.
노태우 대통령도 24일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지적했듯이 전임 대통령을 무한정 산사에 묶어 두는 것이 상책은 아니라고 본다. 5공 발족 이전에 자신이 마련했던 구거의 범위 안에서 그 스스로 저지른 업보를 되씹고 참회토록 하는 것이 전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씨는 사저에 돌아오면서 88년 2월23일 오전 대궐 같은 사저를 버리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산사로 황망하게 떠나야 했던 이유를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전씨는 그날 자신이 국민에게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의 정신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
『물러난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비리의 주인공으로 국민적 비판의 표적이 되고만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하겠으며 국민 여러분의 어떠한 비난과 추궁도 모면할 길이 없어 속죄하는 뜻에서 저의 재산 모두를 국가관리에 맡기고 연희동을 떠나겠다.』
그가 이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면 하산생활도 마땅히 백담사 예불생활의 연장으로 삼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행여 그가 산사 후반부 생활에서 하루 수천명씩 찾아왔던 관광객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착각할까 우리는 우려한다.
그 관광객들 중에는 그의 지자자도 없지 않았겠지만 다수는 권세자의 비참한 말로를 호기심에서 직접 보고자 했던 사람들이라 함이 옳다. 그 내각들의 많음이 5공 향수 또는 복고 선호에서 기인했다고 착각해 전씨가 혹시나 정치활동에 나서거나 5공 핵심파당의 정치활동에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의혹이 추호라도 드러난다면 여론의 거센 역풍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씨 일족과 그 핵심측근이나 추종세력들도 같음 맥락에서 전씨의 상황판단을 흐리게 하는 충동질을 아예 생각조차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혹세무민이며 산사에서의 「자숙」에 그나마 부여되었던 의미를 잃게 만들 것이다.
전씨는 자신의 업보를 씻으려는 한 시민으로 조용한 연희동생활을 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 모두도 그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모야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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