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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백신' 연주 20년 이상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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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음악 기부엔 국경, 은퇴 없어요"

권혁재의 사람사진 /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

권혁재의 사람사진 /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

“2003년 국제백신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에 초대되었어요.
백신을 못 맞는 어린이에게 백신을 후원하기 위한 행사였어요.
거기서 그 가난한 나라의 아이가 웃는 영상을 봤습니다.
우리가 준 건 주사 하나가 아니라 우리 마음을 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날 그 아이들을 후원하는 콘서트를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상희 씨는 2004년 국제백신연구소를 후원하는 콘서트의 첫발을 뗐다.
첫 콘서트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자신과 피아니스트와 둘이 함께 열었다.
다음 해는 4명, 그다음 해는 10명, 20년이 지난 올핸 106명이 함께한다.
첫 단원의 친구, 가족, 이웃이 스스로 하나둘 모여든 게 106명이 된 게다.
단원은 초등학생부터 92세(송진호 송우무역 회장)까지 아우른다.

이름하여 ‘이상희 & 프렌즈’이다.

국립암센터와 함께하는 ‘이상희 & 프렌즈’ 콘서트는 3월 10일 오후 2시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린다. 콘서트 입장료는 물론,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기념품(티셔츠. 에코백. 엽서) 등의 모든 수익금은 국립암센터 발전기금으로 기부된다.

국립암센터와 함께하는 ‘이상희 & 프렌즈’ 콘서트는 3월 10일 오후 2시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린다. 콘서트 입장료는 물론,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기념품(티셔츠. 에코백. 엽서) 등의 모든 수익금은 국립암센터 발전기금으로 기부된다.

이들은 오는 10일, 국립암센터와 함께 하는 콘서트를 한다.
국제백신연구소와 함께하는 콘서트는 8월 11일로 예정되어있다.

두 기부 콘서트 모두 20주년 기념 콘서트다.
이들이 20년 내내 콘서트로 모금한 누적 기부액이 5억을 넘는다.

이들이 이토록 오래 기부 콘서트를 연 비결은 뭘까.
“나의 재능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연주할 수 있잖아요.
그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죠.”
기부를 통한 행복감 때문에 그들은 20년 동안 25회 공연을 한 게다.

″네가 사회에 환원하는 좋은 일을 하면 아빠가 음악회 후원해 줄 테니 좋은 일을 해보자.″ 이는 이상희 단장이 1997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할 무렵, 인형공장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가 한 제안이다. 이에 이 단장은 '유니송'이라는 앙상블을 만들어 입양인 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 단장의 기부 연주는 이때부터 시작된 터였다.

″네가 사회에 환원하는 좋은 일을 하면 아빠가 음악회 후원해 줄 테니 좋은 일을 해보자.″ 이는 이상희 단장이 1997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할 무렵, 인형공장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가 한 제안이다. 이에 이 단장은 '유니송'이라는 앙상블을 만들어 입양인 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이 단장의 기부 연주는 이때부터 시작된 터였다.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퍼스트 클래스(First class)로 졸업한
이상희 씨가 귀국하자마자 시작한 이 콘서트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단장은 2012년 연주회를 며칠 앞두고 7년 만에 생긴 아이를 유산했다.
그런데도 뱃속에 유산된 아기를 둔 채로 콘서트를 했다.
예정된 연주회를 그만둘 수 없었기에 그리한 게다.

이상희 단장은 지나온 이야기를 하며 때때로 울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더욱이 어렵게 가진 아이를 유산한 사실, 유방암 진단 사실을 숨긴 채 단원들 앞에서 웃음을 보여야 했던 그 아픔을 이야기할 땐 숫제 눈물이 온 뺨을 적시기도 했다.

이상희 단장은 지나온 이야기를 하며 때때로 울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더욱이 어렵게 가진 아이를 유산한 사실, 유방암 진단 사실을 숨긴 채 단원들 앞에서 웃음을 보여야 했던 그 아픔을 이야기할 땐 숫제 눈물이 온 뺨을 적시기도 했다.

국제백신연구소뿐만 아니라 국립암센터를 후원하게 된 건
2018년 자신이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부터였다.
자신의 몸 돌볼 처지에 남의 아픔을 돌보고자 나선 게다.
언제까지 할 거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은 “기부엔 은퇴가 없잖아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