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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 헌법 못박은 프랑스…마크롱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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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여성의 낙태할 자유’를 헌법에 명문화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나온 소식으로, 전 세계에서 낙태권을 둘러싼 공방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4일(현지시간) AP통신, CNN 등에 따르면 프랑스 의회는 이날 여성의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프랑스 상·하원은 이날 파리 외곽 베르사유궁전에서 합동 회의를 열고 표결을 진행해 찬성 780표, 반대 72표, 기권 50표로 헌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했다. 표결에는 전체 의원 925명 중 902명이 참석했다.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는 기권을 제외한 유효표(852표)의 5분의 3인 512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찬성표가 의결 정족수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 헌법 제34조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된다.

AP통신은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다”며 “개헌안이 통과되자 여성 의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이를 지켜보던 수백 명의 시민도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회의가 열린 베르사유궁전 인근에서는 낙태에 반대하는 이들의 시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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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1975년 저명한 여권 운동가이자 당시 보건 장관이던 시몬 베이유의 주도로 낙태가 합법화됐다. 이후 법이 여러 차례 개정돼 현재는 임신 14주까지 낙태가 허용된다. 따라서 이번 헌법 개정으로 실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프랑스 의회가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하기로 결정한 건, 지난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약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로 대 웨이드’ 판결(1973년)을 폐기한 영향이 크다.

당시 미 사회가 이 문제로 양분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 사안을 중점 추진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고, 프랑스 의회는 낙태권을 ‘되돌릴 수 없는 권리’로 만들기 위해 헌법 개정을 준비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X(옛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의 자부심,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대대적인 축하연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이번 헌법 개정은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11월 대선이 열리는 미국에서는 낙태권 이슈가 다시 한번 정국을 휩쓸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는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이후 지금까지 14개 주가 낙태를 금지해 여성과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권을 보장하는 연방법 제정을 공약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15주 이후 낙태 금지’를 언급하며 보수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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