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낮춘 외국 간병인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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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지옥’ 한국, 한은의 제안

치매가 있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40대 여성 A씨는 최근 아버지 간병 문제가 고민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아버지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해 거동이나 의사소통이 어렵다. 정부가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장기 요양 급여를 받고는 있지만, 요양 등급(1~5등급)이 4등급이라 하루 세 시간만 요양보호사가 집에 방문한다. A씨는 자신이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 있어 줄 간병인을 추가로 구해야 하는데, 비용은 월 300만원이 훌쩍 넘는다. A씨는 “입주 간병인은 월 400만원이고, 더 오를 수 있을 거란 이야기도 들었다”며 “사실상 월급이 그대로 간병비에 들어가는 수준이라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인 간병비가 자녀 가구 소득의 60%에 달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에 돌봄 수요는 늘어나지만 노동 공급은 줄어들어 간병비가 갈수록 오른 때문이다. 높은 간병비에 가족 구성원이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직접 간병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면, 약 20년 뒤 최대 77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채민석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과장 등이 발표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간병비는 약 370만원으로 추산됐다.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224만원)을 훌쩍 넘는다. 자녀 가구(40~50대) 중위소득(588만원)의 60%도 넘어서는 수치다.

이런 간병비 오름세는 최근 들어 가팔라졌다. 열악한 처우에 간병직 기피 현상이 생기면서 인력난이 심해지자 높은 간병비를 지불해야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해 간병비는 2016년에 비해 50% 올랐는데, 같은 기간 명목임금 상승률(28%)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노동 수급 불균형이 간병비를 높이는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딸이 일 그만두고 치매 아빠 간병…20년 뒤 77조 경제 손실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돌봄 서비스직 노동 공급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 명에서 2042년 61만~155만 명까지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돌봄 서비스직 종사자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50~60대가 일할 수 없게 되는 나이가 되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한다는 분석이다. 반면에 고령화로 돌봄 서비스 수요는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2042년에는 노동 공급이 수요의 30%만 채우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임금을 올려 청년층·고학력자가 유입된다 해도 공급 부족을 충분히 해소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간병비가 비싸지면 가족 구성원은 일을 그만두고 직접 간병에 나서는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가족 간병 규모가 2022년 89만 명에서 2042년 212만~355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이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비교적 생산성이 낮은 간병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손실로 연결된다. 연구진은 자녀 가구인 40~50대가 받는 평균 임금을 고려해 가족 간병으로 인한 노동 손실 비용을 계산했는데, 2042년 46조~77조원에 이른다. 2042년 예상 국내총생산(GDP)의 2.1~3.6%다. 이들이 정보통신(IT)·제조업 등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서 일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기회비용이 그만큼 막대하다는 의미다.

2042년 간병인 61만~155만 명 부족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돌봄 서비스에 외국인 노동자를 투입해 비용을 낮추는 안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급증하는 수요를 내국인 노동자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다. 채민석 과장은 “돌봄 서비스직의 임금 수준을 높여 내국인 노동자를 늘리는 방안은 간병비 부담을 지금보다 더 키울 수 있고, 정부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재정적자 문제를 키운다는 점에서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은 연구진은 ▶고용허가제 확대와 돌봄 서비스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개별 가구의 사적 계약 방식에 의한 외국인 직접 고용 등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모두 돌봄서비스 임금 자체를 낮추는 방안이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협약과 최저임금법 등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다만 현행 최저임금법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서, 돌봄 서비스 업종에서 내·외국인 구분 없이 최저임금을 낮추는 것은 가능하다. 또 사적 계약 방식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연구진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가격 왜곡을 줄이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차등임금’까지 꺼낸 건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용이 충분히 낮아져야만 자녀 가구가 가족 간병 대신 원래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국 인력 도입이 시급하지만, 지금처럼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61%에 달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부담해야 한다면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이용할 수 있는 가구가 현저히 적을 것이란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일각 “돌봄업 종사자 임금 하락 우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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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는 외국인 돌봄 서비스 노동자를 시간당 1721~2797원의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고 있다. 한국의 가사도우미 임금(1만1433원)보다 현저히 낮다. 오삼일 한은 고용분석팀장은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이 여성 평균 임금의 25%까지 하락하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이 유의미하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내국인 돌봄서비스 종사자가 덩달아 임금 하락을 겪을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또 최저임금 정책의 핵심 이슈인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를 직접 거론하면서 향후 노동계에서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내국인 돌봄 서비스 종사자는 언어의 이점이 있는 만큼 임금과 처우가 높게 형성될 것”이라면서 “자연스럽게 내국인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인 노동자가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값싼 노동력 활용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서비스 질 수준 유지가 어려워진다”며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국내 간병인의 자격 기준과 직무 기준부터 제도화·공식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이사도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 인력을 도입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열악한 일자리’로 가사서비스를 고착화하기 쉬워, 인력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은과 KDI가 공동 주최한 노동시장 세미나에 참석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외국인 돌봄 노동자 유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기는 상황인 만큼, 돌봄 서비스 수요자가 질 높은 서비스를 낮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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