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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화요일 전날, 출마자격 시비 턴 트럼프…아직도 91개 혐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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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자신의 마러라고 저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자신의 마러라고 저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완전한 면책특권이 없는 대통령은 잘못될 수도 있을 결정을 내릴 용기를 갖을 수 없다. 그런 대통령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가와 세계를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기소를 당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연방 대법원이 1ㆍ6 의회 난입 사태를 부추긴 혐의로 트럼프의 대선 경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은 직후였다. 대선 후보 자격 시비라는 장애물을 제거해 준 연방 대법원을 향해 이번엔 ‘대통령 면책특권 인정’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날 연방 대법원은 “헌법 수호를 서약한 공직자가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한 경우 연방 공직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14조 3항의 적용 권한은 개별 주(州)가 아닌 의회에 있다”고 밝혔다. 연방 공직자의 피선거권 제한은 주(州) 소관이 아닌 연방 의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취지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해당 조항을 적용해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 자격이 없다고 한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이날 만장일치로 뒤집었다.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미국을 위한 큰 승리”라고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 “(사법기관의) 무기화를 중단하라. 검사와 판사를 이용해 공격하지 말고 직접 싸우라”고 했다.

‘수퍼 화요일’(5일)을 하루 앞두고 나온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즉각 영향을 미쳤다. 콜로라도주처럼 트럼프에 공직선거 출마 자격이 없다고 결정했던 메인주는 이날 기존 결정을 철회했다. 메인주는 5일 민주ㆍ공화 양당의 경선이 열린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 대법원 앞에서 언론사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신화=연합통신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 대법원 앞에서 언론사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신화=연합통신

4일 노스다코타 경선서 또 압승

지난 3일 미 수도 워싱턴 DC에서 유일한 경선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에게 첫 패배를 당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일 노스다코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득표율 84.4%를 기록하며 대의원 29명을 쓸어담았다. 빼앗긴 승기를 탈환하며 대세론을 굳혔다는 평가다. 헤일리 전 주지사의 득표율은 14.1%에 그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화당 후보 지명은 시간 문제다. 공화당원을 대상으로 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80%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는 당 대의원 전체 2429명 중 874명(36%)이 걸린 수퍼 화요일에 압승을 거둬 헤일리에 쐐기를 박는다는 계획이다.

사법리스크 여전…대선 뒤집기, 최대 ‘뇌관’

그러나 트럼프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발등의 불이다. 후보 자격 시비를 털어내긴 했지만 ▶2020년 대선 불복 및 1ㆍ6 의회 난입 관여 혐의 ▶2020년 조지아주 선거 조작 시도 혐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및 회사 장부 조작 혐의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혐의 등 4개의 사건에서 총 91개 혐의로 형사 기소된 상태다.

특히 잭 스미스 연방 특검이 기소한 2020년 대선 불복 및 1ㆍ6 의회 난입 관여 혐의 건이 최대 뇌관으로 꼽힌다. 이 건은 ‘(대통령 재임중) 면책특권 인정’의 트럼프 측 요구에 대해 연방 대법원이 심리하기로 결정하면서 구두 변론이 열리는 4월 22일까지는 관련 재판의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워싱턴 DC 연방 지법과 연방 항소법원에서는 면책특권 불인정 판결이 나왔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이 심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 전략이 효과를 봤다.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지난해 8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법무부에서 2020년 대선 뒤집기 시도 등 혐의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형사 기소한 것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지난해 8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법무부에서 2020년 대선 뒤집기 시도 등 혐의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형사 기소한 것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면책특권 관련 건은 6월 말 연방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본안 재판도 9~10월쯤에야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대선 전 유ㆍ무죄를 가리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진 셈인데, 이를 두고 대선 직전 본안 재판이 열리면 오히려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트럼프의 대선 출마 자격 유지를 결정한 연방 대법원 판결도 1ㆍ6 의회 난입 등 내란 가담 혐의에 대해서는 실체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 형사 기소 건에 대한 재판은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성인배우와의 성관계 폭로를 입막음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이 과정에서 회사 장부를 조작한 혐의와 관련해서는 오는 25일 뉴욕 맨해튼지법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기밀유출 혐의 건은 5월로 잡았던 재판 개정이 연기된 상태다.

민사재판 잇단 패소로 ‘벌금폭탄’ 악재

소송 비용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민사 재판도 해소되지 못한 악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부동산 자산 부풀리기를 통한 사기 대출 혐의와 관련된 뉴욕 맨해튼지법의 1심 재판에서 4억5400만 달러(약 6000억원)의 ‘벌금 폭탄’을 받으며 재정 위기에 빠졌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추행 피해를 주장한 작가 E 진 캐럴이 낸 명예훼손 위자료 소송에서도 져 8330만 달러(약 1100억원)를 물어야 한다. 재정난에 빠지면서 ‘황금 운동화’ 등 굿즈 판매 운동까지 나섰지만 벌금 납부 지연 이자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트럼프 스니커즈’ 판촉 행사에서 판매용 금색 운동화를 들어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트럼프 스니커즈’ 판촉 행사에서 판매용 금색 운동화를 들어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이같은 사법 리스크가 유권자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변수라는 점이다. 지난달 13일 공개된 로이터통신ㆍ입소스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가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55%에 달했다.

이런 경향은 대선 승패를 가를 스윙 스테이트(경합 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블룸버그통신ㆍ모닝컨설트가 펜실베이니아ㆍ미시간ㆍ위스콘신ㆍ애리조나ㆍ네바다ㆍ노스캐롤라이나ㆍ조지아 등 7개 스윙 스테이트 유권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53%는 트럼프가 형사 사건 중 하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를 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대선 본격화 국면에서 트럼프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유권자 표심이 상당 부분 흔들릴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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