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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수사 속도…검찰, 70억 토해낸 '철도노조 판례'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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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찰이 전공의 사태 수사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검찰은 2006년 3월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이 업무방해죄로 인정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07도482)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정부가 “오늘부터 미복귀한 전공의 확인을 위해 현장점검을 해 법과 원칙에 따라 예외 없이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대한의사협회 간부들에 이어 당사자인 전공의들에 대한 법 적용도 가시권에 들어오면서다.

업무방해죄 ‘위력’ 인정한 철도노조 판례 

정부가 의료 현장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 7000여 명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한 4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의료 현장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 7000여 명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한 4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이 검토 중인 판례에 따르면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철도노조가 강행한 2006년 3월1~4일 총파업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파업 하루 전인 2006년 2월28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철도노조의 단체교섭이 결렬된 후 직권중재회부가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철도노조가 파업 강행·지시했다는 점을 주요하게 봤다.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에서 위력이 인정되려면 ①사용자(코레일)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져 ②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직권중재회부가 결정된 때와 필수유지업무 해당할 때 쟁의행위를 제한한 옛 노동조합법을 철도노조가 위반하면서까지 파업을 강행하리라고는 코레일 측이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위력이 인정된다고 봤다. 또 파업으로 인해 수백 회의 열차 운행이 중단돼 총 135억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하는 등 ‘중대한 손해’도 인정했다.

 철도노조원들이 파업(작위)이 아닌 출근하지 않는 식(부작위)으로 근로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선 “부작위에 그치지 아니하고 이를 넘어서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해 근로자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집단으로 노무 제공을 중단하는 실력행사이므로 위력에 해당하는 요소를 포함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철도노조 측은 파업으로 인한 손해액 135억원 중 약 70억원을 코레일에 배상해야 했다.

2006년 3월1일 시작된 철도노조 파업 당시 백성곤 철도노조 사무처장(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006년 3월1일 시작된 철도노조 파업 당시 백성곤 철도노조 사무처장(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쟁의행위·공동정범 될까…수사로 번지는 전공의 사태

 검찰이 “형사집행기관으로서 경찰로부터 사건이 송치될 경우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인 만큼 향후 업무방해죄의 ①전격성과 ②중대한 손해 등 요건을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초점이 모인다. 전공의들은 “파업이 아니라 헌법에 따라 직업선택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입장이어서 판례와 같이 집단사직을 사용자(병원)의 업무를 방해한 쟁의행위로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철도노조 사례에서도 전원합의체 13명 중 5인은 “단순히 근로자가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음으로써 근로 제공을 하지 않는 경우와 폭력적인 수단이 수반되는 파업과 혼동돼서는 안 된다”며 “근로자들이 쟁의행위의 목적에서 집단으로 근로 제공을 거부했다는 사정이 존재하다고 하여 개별적으로 부작위인 근로 제공의 거부가 작위로 전환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대책위)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에 대한 고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른바 빅5병원 전공의들을 공동정범으로 고발했다. 뉴시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대책위)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에 대한 고발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른바 빅5병원 전공의들을 공동정범으로 고발했다. 뉴시스.

 이 외에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의협·대한전공의협회 관계자들과 함께 일부 전공의들을 의료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의 공동정범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A 변호사는 “판례상 공동정범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공의들과 의협이 연락이나 회의를 통해 공모하고, 역할을 분담(기능적 행위지배)하는 등 여러 요건이 증거로서 인정돼야 한다”며 “현재로써 공동정범 인정 여부까지 거론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 잘 아는 한 법조계는 관계자는 “법적 대치가 정치적인 협상이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정도라면 모를까, 법을 실제로 적용해 완력 싸움을 벌이는 건 여전히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며 “수사는 이번 사안에서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를 하더라도 일괄적 법적용이 아닌 개별 케이스를 따지게 될 것”이라며 “정책적 논의 외에 형사사법 분야가 들떠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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