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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장 꿈’ 꿨다가…꾼 돈 못갚는 2030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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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자영업자 대출 위험수위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개인사업자)의 대출 부실에 경고등이 울리고 있다. 이들의 대출 잔액이 1100조원을 넘어선 데다, 연체액이 1년 만에 50%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20·30세대 젊은 사장 중심으로 여러 금융사에 돈을 빌린 뒤 빚을 갚지 못한 ‘다중채무’ 연체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4일 국내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가 양경숙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전체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액은 지난해 말 기준 1109조6657억원으로 1년 전보다 27조400억원 불어났다. 335만 명 상당의 자영업자가 개인사업대출은 물론 개인 자격으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끌어다 쓰면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문제는 이들이 3개월 이상 대출이자(원리금)를 갚지 못한 연체액이 지난해 말 27조3833억원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1년 사이 9조893억원(50%) 늘었다. 코로나19와 고금리 파고에 자영업자의 상환 부담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중소기업의 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전달보다 0.03%포인트 하락한 연 5.28%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대출 금리가 연 2%대였던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높다.

자영업자 ‘부채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부실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자영업을 하면서 3개 이상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빠르게 증가해서다. 일반적으로 다중채무자는 ‘빚으로 빚 돌려막는’ 경우가 많아 한번 빚을 못 갚으면, 연쇄 부실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 다중채무 자영업자는 173만1283명으로 전체 자영업 차주(335만8499명)의 51.5%를 차지한다. 대출받은 자영업자 1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다중채무자란 의미다. 이들의 대출 잔액(691조6232억원)은 1년 전보다 16조3186억원 증가했다

대출 부실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다중채무자의 연체액은 21조7954억원으로 2022년 말(14조2949억원)과 비교하면 52.5%(7조5005억원) 급증했다. 같은 기간 평균 연체율은 2.1%에서 3.2%로 올랐다. 다만 나이스평가는 다중채무 연체자의 전체대출액(미연체금액 포함) 기준으로 연체율을 산정했다.

다중채무 자영업자를 연령대로 살펴보면 사업 경험은 물론 상대적으로 자산이 적은 ‘20·30세대 젊은 사장’의 연체율이 늘었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연체율은 29세 이하가 6.59%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30대(3.9%), 40대(3.61%), 50대(2.95%), 60세 이상(2.51%) 순으로, 연체율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낮아졌다.

경기 부진으로 빚 감당을 못하는 자영업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위해 ‘대출 지원’에 초점을 맞추면서, 관련 대출의 ‘깜깜이 부실’을 키운 영향도 있다. 정책 자금이 대거 풀리면서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조치가 대표적이다. 2020년 4월 첫 조치가 시행된 뒤 다섯 번 연장했다.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는 지난해 9월 종료됐지만, 만기 연장은 최대 내년 9월까지다.

최근엔 자영업자 대상으로 금리 연 4%를 초과한 이자납부액(최대 300만원)을 돌려주는 이자환급 정책도 선보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어도 돈을 벌어도 이자를 못 갚는 한계기업을 솎아내는 ‘차주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계기업이 링거(정부지원)로 연명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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