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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러다 순직하겠다” 현장 의료진 ‘번아웃’ 호소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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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주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주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집단사직 2주, 종합병원 진료 공백 심각해져

전공의 복귀하고, 의협은 집단행동 자제해야

대형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 현장을 떠난 지 2주일을 맞았다. 정부는 지난달 29일을 복귀 시한으로 설정하고 미복귀 전공의에겐 면허정지 등 중징계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대다수 전공의는 여전히 현장에 복귀하지 않았다. 의료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양상이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대형 병원에선 의대 교수들과 전임의(전문의 자격 취득 뒤 세부 수련 중인 의사)들이 남아 환자를 보고 있다. 이들은 잦은 야근과 당직 근무 등으로 극심한 피로와 ‘번아웃’을 호소한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며 “이러다 사직이 아니라 순직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내과는 밀려드는 환자를 안 받을 수도 없으니 교수들이 당직을 서가면서 세 개 병동을 커버하고 있다. 너무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기간이 끝난 전임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진료 공백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이제라도 전공의들은 의료인의 본분을 잊지 말고 환자의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라도 정부 정책에 이의가 있으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다만 그 수단과 방법이 정당해야 국민 다수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더라도 일단 의료인의 책무를 다하면서 목소리를 내야만 국민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정부도 끝까지 전공의들과의 대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될 것이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을 방조하는 듯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의협은 어제 서울 여의도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의대 증원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정부가 제시한 2000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대 증원은 필요하다는 의료계 내부의 목소리마저 외면했다. 의협은 지난 1일 성명서에서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릴 수도 있다”며 집단 휴진 가능성도 내비쳤다.

의협 집행부는 집단 휴진이 국민의 거부감만 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종합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환자들의 불안이 심한 상황에서 동네 병·의원까지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 여론은 더욱 나빠질 뿐이다. 의협은 의료법에 의해 설립된 법정 단체로 전국의 모든 의사는 반드시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만큼 의협 집행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국민의 건강권 향상과 의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게 마땅하다. 그 원칙은 외면하고 직역 이기주의로만 일관한다면 민심의 동의를 얻기는 힘들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