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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칭화대학의 ‘AI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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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굴욕’, ‘대참사’, ‘충격’….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뉴스에 붙은 제목이다. 실망과 아쉬움, 분노가 섞여 있다. 대체 한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분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중국의 주요 과학기술 인사가 참여하는 출판 발표회가 열렸다. 정부 기관인 중국과학원과 중국자연과학기금회가 3년여 진행해 온 『중국 과학기술 2035 발전 전략 총서』 출판 기념행사였다. 책은 물리·수학 등 기초 과학 분야 18권, AI·양자역학 등 미래 기술 19권을 포함해 모두 38권으로 구성됐다.

‘중국 과학기술 2035 발전 전략 총서’. 38개 핵심 과학기술의 미래 발전 전략을 담았다. [사진 백서인 교수]

‘중국 과학기술 2035 발전 전략 총서’. 38개 핵심 과학기술의 미래 발전 전략을 담았다. [사진 백서인 교수]

중국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 발전 전략을 총정리하는 프로젝트였다. 국가 최고 과학자(원사) 400여 명이 주도했고, 3000여 명의 학계 연구원들이 달려들었다. 백서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는 “연구의 넓이와 깊이에 질렸다”며 “중국의 과학기술 선진화 작업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혀를 찼다.

인재 양성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칭화(淸華)대에는 ‘AI반(班)’이라는 학과가 있다. 정규 학과가 아니다. 수학·물리·전자공학 등의 학과 신입생 중에서 최고 인재를 다시 뽑아 반을 구성한다. 고등학교 때 전국 수학경시대회, 컴퓨터 경진대회 등에서 입상한 학생들도 선발 대상이다. 그들이 중국 AI 기술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칭화대에는 이 밖에도 컴퓨터 공학을 연구하는 야오반(姚班),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량신반(量信班)도 있다. 학생 선발, 교육 방법 등은 AI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외 최고 교수들을 초빙해 수업하고, 해외 유학을 지원하기도 한다. 대학이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지 알 수 있다.

뒤에는 정부가 있다. 중국은 ‘국가 중점 연구개발 계획’에 따라 핵심 전략 기술을 선정하고, 자원을 몰아준다. 대상 기술은 항공우주·수퍼컴퓨터·AI·신에너지 등으로 생물처럼 확대된다. 정부와 기업, 대학, 연구소가 똘똘 뭉쳐 과학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R&D 예산 삭감으로 과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와 기업, 학계 사이에 끈끈한 ‘연구 네트워크’가 형성될 리 없다. 이공계 인재들은 과학기술을 외면한 지 오래다. 의대 신입생 2000명 확대 방침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재수에 뛰어들 판이다. 그러고도 중국에 뒤졌다며 ‘대참사’라고 호들갑이다. 사필귀정(事必歸定),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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