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승진시킬테니 임신 뒤통수 치지마"…女 4명중 1명 이런 차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제공=셔터스톡]

사진제공=셔터스톡]

#1.승진 인사를 앞둔 여성 직장인 A씨는 상사로부터 “승진시켜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승진한다면) 임신·육아휴직 등으로 뒤통수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승진한 이후엔 출산·육아 등을 이유로 업무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것이다.

#2.직장인 B씨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본부장으로부터 퇴사를 요구받았다. 회사 경조 휴가에 연차를 붙이려고 했는데, 본부장은 “어차피 연차 휴가 신청을 결재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회사를 나가라고 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소개한 일부 기업의 출산·육아관련 부당 대우 사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2명까지 떨어지면서 국가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여성 직장인들의 고충은 출산·육아 의지를 깎아내리는 한국 직장 문화의 실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3일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고용상 성차별 경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의 27.1%는 ‘혼인·임신·출산을 퇴직 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 체결을 강요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 직장인 4명 중 1명은 임신·출산 등에 따른 직접적인 차별을 경험하는 셈이다.

대부분 여성에게 입사할 때 결혼하면 퇴직하겠다는 각서를 받거나, 여성을 채용할 때 미혼을 채용 조건으로 제시하는 등의 경우였다. 모두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사안이지만, 중소 사업장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여성 직장인들이 겪는 것이다.

피해를 증명하기 힘든 이른바 '은근한 차별'도 존재했다. 3년차 병원 직원 C씨는 법에 따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사용했는데, 병원은 복지 차원에서 원내 식당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C씨만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단축 근무로 “지나친 혜택을 받고 있다”라는 이유에서다. 직장인 D씨는 결혼 소식을 알리자 상사로부터 “어차피 휴직하고 마무리 안 하고 나갈 사람 아니냐”며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렇다 보니 한국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도 여전히 뒤처지는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2020년 기준)는 48명으로, 일본(44.4명)과 함께 OECD 주요국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스웨덴은 409명, 독일은 180.9명, 핀란드는 140.4명을 기록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험난한 육아 현실은 출산·육아를 경험해본 부모들의 의지도 꺾었다. 지난해 둘째 이상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1만2448명 줄어든 9만1700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만명을 밑돌았다. 2003년만 해도 둘째 이상 출생아 수가 첫째아 수를 웃돌았지만, 2004년부터 역전된 이후 둘째 이상 출생아 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는 출산에 긍정적이었던 부모들이 실제 육아를 경험한 이후 추가적인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의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출산율 하락으로 노동력 부족이 우려되자 경제단체인 연방상공회의소가 먼저 나서서 가족 친화 경영 문화를 확산시켰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과 경제단체가 앞장서서 일·가정 양립 문화 조성과 체질 개선을 주도하고, 정부는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 사업장도 부담 없이 육아휴직 등 제도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해법 역시 필요하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보니 육아휴직을 보내면 정말 일할 사람이 없다”며 “업종별로 육아휴직에 따른 대체인력을 조달할 수 있는 조직이나 기구를 만들어 운영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