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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해야 사업비 더 받나"…늘리고픈 총장, 말리는 학장 갈등 분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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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의과대학 부속 건물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의과대학 부속 건물 모습. 뉴스1

정부가 오는 4일까지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보유한 대학들로부터 증원 규모 신청을 받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증원을 희망하는 대학본부(총장)와 의대 학장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의대 증원이 여러모로 이득인 총장들은 큰 숫자를 적어낼 예정인 반면, 실제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학장·교수들은 수요 제출을 보류하거나 증가 폭을 최소화해달라며 막판 설득에 힘쓰는 모습이다.

현재 의대 정원이 110명인 경북대는 총장이 “신입생 정원을 250~300명으로 늘려달라고 교육부에 전달할 생각”이라고 2일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의대 학장이 “성급하고 무모하다”고 비판하면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이날 보도된 언론 인터뷰에서 “경북대의 경우 의대 교수 55%가 증원에 찬성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경북대는 지난해 수요조사에서는 90명 증원을 희망했는데, 이번 최종 조사에서는 140명 이상의 더 큰 숫자를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권태환 경북대 의대 학장은 홍 총장에게 “저는 여러 차례 대규모 증원을 하면 교육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말씀드렸다”며 인터뷰를 반박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여기서 “교육부로 보내는 서류 제출을 보류하거나, 현행(110명) 동결 혹은 의대 학장협의회에서 요청한 10% 증가 폭 안에서 제출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권 학장이 이 메시지를 대학본부 보직자 교수들과 의대 학장들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회원들에게도 공유하면서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 등으로 퍼졌다.

권 학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총장님이 저에게 250~300명 증원을 언급하거나 (증원했을 경우) 교육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학교 안에서 논의하기 전에 외부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속상하고 곤란해 메시지를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80년대엔 240명도 수업” vs “그때와 비교 말이 되나”

권태환 경북대 의과대학 학장. 사진 경북대 의대 홈페이지

권태환 경북대 의과대학 학장. 사진 경북대 의대 홈페이지

권 학장은 “우리 의대에서는 ‘현 상황에서 증원 찬성 논의를 하거나, 증원 수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부에 보냈지, 증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의대 교수 55%가 증원에 찬성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이 회의에서 ‘현재 교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인 125명(15명 증원)까지 일단 받자’는 의견을 냈을 뿐인데, 마치 55%가 대규모 증원을 찬성하는 것처럼 (총장이) 말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홍 총장이 인터뷰에서 “1981년만 해도 한 학년 정원이 240명이었다. 그 시절 많을 때는 300명을 대상으로도 수업했으니 정원을 늘려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권 학장은 반박했다. 권 학장은 “제가 82학번이어서 정확히 아는데, 당시 경북 의대 정원은 160명이었고, 정부가 30%를 추가해 208명이 됐다”며 “‘240명’이라는 숫자 자체도 오류이지만, 당시와 현재 의과대학 교육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큰 강의실에서 수업만 하는 강의는 이제 거의 없고 대부분이 조별 토의나 실습”이라며 “(대규모로 증원하면) 임상 진료 보는 교수들 교육 부담이 늘어 진료에 차질이 생기고, 학생들 임상 실습을 보낼 의료기관이 없는 점 등 수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세계 의학교육 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정원이 대폭 늘면 기준을 못 맞추는 학교들이 생겨 예전 서남대 의대처럼 폐교되는 사례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라고도 했다.

권 학장은 총장에게 전송한 메시지에서 “총장께서 추구하는 교육은 어떤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렇게 해야(의대를 대폭 증원해야) 글로컬 대학이 되고, 사업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올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지금부터 저는 학장으로서의 수명은 이미 다했다”며 교수들의 동의 하에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지난 1일에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성명을 통해 각 학교 총장에게 교육부 기한까지 답변을 제출하지 말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국 40개 의대 중 33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참여한 성명에서 “의대 정원 수요는 대학의 교육역량 평가, 의대 교수들의 의견 수렴 등의 절차가 필수적이지만, 교육부가 정한 시한까지는 이런 절차를 밟을 시간이 없다”며 “그러므로 ‘3월 4일까지는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이 대학 총장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만류에도 각 대학 총장들이 대규모 증원 수요를 제출하면, 이를 의대 학장이나 교수들이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앞서 지난해 이뤄진 수요조사에서는 40개 의대가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에서 2847명 증원을 희망하는 것으로 취합됐다. 이는 정부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정하는 근거 중 하나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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