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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안 생기게 지은 솥밥에 어머니·장모님표 1국 9찬 ‘한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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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26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백반 ‘안재한상’에 돼지 고추장불고기를 더한 ‘안재정식’(반찬은 2인분).

백반 ‘안재한상’에 돼지 고추장불고기를 더한 ‘안재정식’(반찬은 2인분).

식당(食堂)이라는 단어가 국내 문헌에 처음 나온 건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1412) 5월 11일 기록이다. 성균관 운영에 관한 예조의 건의문 중 유생들 식량을 담당할 양현고(養賢庫) 부분에 나온다. 다음해 9월 3일 ‘예조 판서 황희가 성균관 수리와 식당 신축을 건의하자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하는 기록에 다시 등장한다. 이후 1894년 성균관 교육기능을 폐지할 때까지 식당은 성균관 유생들 ‘학식’ 먹는 곳을 가리키는, 일종의 고유명사였다.

학식이 맛있기는 쉽지 않지만, 이 식당도 성균관 유생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던 듯하다. 식당 이용 점수 50점을 채워야 성균관 유생들만 치르던 과거 도기과(到記科)의 응시 자격을 줄 정도였다. ‘도기’는 하루 아침·저녁을 다 먹으면 1점을 기록하는 식당 출석부다.

식당이 밥을 먹거나 파는 곳을 일컫는 일반명사가 된 것은 조선왕조가 막을 내린 1900년대부터다. 주영하(62) 교수는 일본어 ‘쇼쿠도(食堂)’의 한자음 ‘식당’이란 말이 한국에 전파돼 쓰이게 됐다고 보았다. 나아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서양 레스토랑을 양식당이라고 부르면서, 반사적으로 한식당·중식당·일식당이라는 말도 생겨나 1950년대 말부터 널리 쓰였다고 한다.

식당은 밥 먹는 곳이니 무엇보다 밥이 중심이어야 하는데 요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대중식당에서는 대개 한꺼번에 많이 지어 그릇에 퍼 온장고에 두고 종일, 심하면 다음 날까지 상에 낸다. 밥은 지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이 빠지고 풀기가 마르면서 촉촉함과 탄력이 사라진다. 보온한다고 녹말의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묵은 밥은 맛이 없다.

그런 시류를 굳이 거스르면서 밥에 공을 들이는 식당도 있다. 밥을 중심으로 1국 9찬의 백반 ‘안재한상’을 대표 음식으로 내는 잠실학원사거리 ‘안재식당’이 그렇다. 밀양 출신 주인 겸 요리사 안재만(40)씨는 상마다 누룽지 없는 솥밥을 새로 지어 낸다. ‘누룽지 안 눌은 밥’은 그의 기준이자 소신이다.

돼지불고기 접시를 들고 있는 안재만씨. [사진 이택희]

돼지불고기 접시를 들고 있는 안재만씨. [사진 이택희]

밥쌀은 2019년 개업 때부터 누룽지 향이 나는 수향미(경기 화성)를 쓴다. 불린 쌀 140g에 물 115mL를 붓고 인덕션 중약불에 8분 올려 누룽지가 눋지 않은 밥 250g을 완성한다. 센 불로 지으면 누룽지가 나오지만, 밥 위쪽은 마르고 중심부 쌀은 너무 익어 밥맛이 고르지 않았다. 그는 고르게 부드럽고 쌀의 존득한 질감이 살아있는 밥을 추구한다. 손님이 미리 말하면 누룽지 있는 밥을 지어 낸다.

밥보다 사연이 재미있고 맛있기는 반찬들이다. 고향 이웃들 농산물로 준비하는 게 절반 가까이 된다. 모두 국내산인 재료의 원산지 표시는 시군까지 밝혔다. 이것만 봐도 맛은 짐작이 간다. 기본 상에는 반찬 양을 적게 내지만, 모자라면 셀프 바에서 양껏 더 담아 와 먹을 수 있다.

9찬 중 네 가지를 밀양 어머니가 만들어 보낸다. ①감말랭이 고추장무침 ②고추부각 ③노지·야생 들깻잎지 ④경남 남해 장모님 멸치액젓과 밀양 사과 달인 물로 고춧가루를 개서 담근 김장김치. 나머지 반찬은 ⑤꽈리고추·통마늘·메추리알 섞은 1++ 한우 사태 장조림 ⑥광양 애호박 명란 찜 ⑦다시마·생강 우린 식초에 간장과 고춧가루 섞은 양념장을 상에 내기 직전 끼얹은 포천 어린 열무 겉절이 ⑧음성 송화버섯 볶음 ⑨광천 꼴뚜기젓 무침 등이다. 국은 살이 꽉 찬 국산 냉동 꽃게 된장국이다. ‘밀양 장마을’ 전통 된장을 풀고 장모님 멸치젓으로 어머니가 내린 어간장을 타서 감칠맛을 더했다. 설 지나고 황태미역국으로 바꿨다 한다. ‘안재한상’에 비장탄 숯불로 구운 돼지 고추장불고기나 1++ 한우 설도 소금불고기를 더하면 ‘안재정식’이 된다.

법과대학을 나온 안씨에게 요리는 팔자이자 타고난 재주인 듯하다. 대학 신입생 때 학과 MT 이후 요리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이 나서 다른 학과나 동아리 행사 때 불려 다니기까지 했다. 1학년 마치고 입대해 최전방 을지부대 철책초소(GOP)에서 복무했다. 배치 며칠 후 취사병이 전역했는데 후임이 오지 않았다. 소초장이 자원자를 뽑을 때 얼른 손을 들었다. 신이 나서 육군 정량과 조리법을 규정한 취사 야전교범(FM)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면서 보급품만으로도 끼니마다 새로운 요리를 준비해 소초원 22명의 칭찬을 들었다. 10개월쯤 그런 군 생활을 즐겼다.

2학년에 복학해 학과와 동아리가 같은 후배 여학생과 사귀기 시작했다(현재 부인). 어머니는 고시 공부하라며 겨울방학에 스님이 1명뿐인 통도사 서축암으로 보냈다. 며칠 안 돼 공양주가 사라졌다. 스님에게 “군대 취사병 출신인데 제가 하죠”하고 나섰다. 냉장고에 좋은 재료가 많아 색다른 요리 실험 실습을 즐겁게 했다. 음식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이웃 암자 스님과 공양주들이 먹으러 왔다. 다른 공양주들이 절 음식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방학 3개월간 고시 공부 대신 밥 짓는 수련에 정진했다.

진짜 요리 공부는 두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한다. 약사가 직업이던 미식가 아버지의 까다로운 입맛을 뒷바라지하느라 요리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가 첫 번째 선생님이다. 다음은 ‘서울 어머니’로 모시는 요리연구가 백지원(68) 선생이다. 안재식당 이웃에서 운영하던 ‘마담타이’ 음식이 맛있어서 먹으러 다니다가 모자관계처럼 가까워졌다. 요리를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음식도 좋아질 거예요”라는 말로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한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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