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사의여행스케치] 이탈리아 비첸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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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첸차에 가면 팔라디오를 만날 수 있어요." 베네치아 여행 사흘째, 수상버스를 타고 도시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던 내게 국적불명의 한 여행객이 그 말을 해줬다. 기차를 타고 40분이면 간다고 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이며 후에 유럽과 미국의 신고전주의 건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하지만 아는 것은 그뿐, 비첸차라는 지명조차 생소했다.

다음 날 다시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역에 가 비첸차행 열차를 탔다. 운이 좋았는지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고 정시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시내로 들어서자 깨끗하고 부티 나는 작은 도시가 나를 반겼다. 세련된 이탈리아 북부의 신사들과 멋쟁이 숙녀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베네치아 도심에서는 느끼기 힘든 차분한 여유가 있었다. 팔라디오 길가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카페 특선 샐러드로 천천히 배를 채우며 거리 분위기에 적응했다. 팔라디오는 비첸차를 중심으로 그의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덕분에 그가 기본 계획을 한 가로 위에 그의 손을 거친 20여 채의 건축물들이 곳곳에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테아트로 올림피코(올림픽 극장)에 가서는 꽤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 팔라디오 말년의 작품이며 그의 제자 스카모치가 완성했다고 한다.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은 무대. 유럽의 첫 실내 공연장이었다는 이곳의 무대 장치는 원근법을 적용한 입체 그림처럼 보였다. 거장 팔라디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숨바꼭질을 하면 정말 즐겁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문 웹사이트(palladio.ashmultimedia.com)를 방문하면 비첸차에 있는 팔라디오 건물들의 설명 및 사진을 볼 수 있다.

오영욱 일러스트레이터·건축가 nifilw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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