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외로 출구 찾는 K-비대면 진료, 국내 법제화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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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달 23일 언론 브리핑에서 의료 공백이 해소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달 23일 언론 브리핑에서 의료 공백이 해소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시범 사업만 9개월인데 법안 처리 기약 없어

‘규제 프리’ 해외 진출 잇따라…국내만 뒤처져

정부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한 지 오늘로 꼭 9개월을 맞았다. 비대면 진료는 해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한참 전에 도입한 제도지만 유독 국내에선 법제화가 늦어지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했다가 다시 중단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정부와 여당은 비대면 진료 도입을 담은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의료계 반발 등으로 관련 법안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렇게 정공법이 막히자 정부가 우회로를 찾은 게 지난해 6월 시작한 시범 사업이었다. 초기에는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는 사실상 불허하는 등 제약 조건이 너무 많았다. 한때 관련 업계에선 “비대면 진료를 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는 말까지 나왔던 이유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보완 방안을 내놓았다. 휴일과 야간에 한해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을 느끼는 환자가 많아 비대면 진료는 활성화되기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은 규제에서 자유로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업계 1위인 닥터나우는 지난달 초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선 초진 환자부터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가 집에서 택배 등으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을 노리는 국내 업체들도 있다. 이른바 ‘K-비대면 진료’의 해외 진출 활성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그 이유가 국내 규제가 워낙 심하고 법제화도 늦어져 탈출하기 위해서라면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달 23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전면 허용한다고 밝혔다. 대형 병원의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내놓은 조치다. 규제 완화는 긍정적이지만 시기와 방법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비대면 진료는 주로 경증이나 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증·응급 환자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 현장이 정상화하면 비대면 진료의 허용 범위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렇게 한시적인 조치만으로는 사업자들이 장기적으로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를 확실히 하고 본 사업에 들어가야 한다. 언제까지나 시범사업만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낼 순 없다. 가급적 이번 21대 국회 임기 안에, 늦어도 총선 후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에선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를 마무리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의료 불편 해소가 민생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명심하고 다음 달 총선에 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