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팩플] '국가경쟁력' 핵심기술 136개, 중국에 첫 역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가경쟁력의 척도인 핵심 과학기술 11대 분야에서 한국 기술 수준이 중국에 처음으로 역전 당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우주항공·해양, 첨단 바이오, 차세대 원자력 분야에서는 주요 5개국 중 한국이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 제자리, 중국↑ 일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9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를 열어 한국을 비롯한 주요 5개국의 11대 분야 136개 핵심 기술을 비교·평가한 ‘2022년도 기술수준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2년마다 한·미·중·일·유럽연합(EU) 등 5개국의 핵심 과학기술을 비교·평가하고 정책에 참고한다. 각국에서 등록한 논문 및 특허를 바탕으로 한 정량적 요소에 국내 전문가 1360명을 설문조사한 정성 요소를 합친 결과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선두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81.5%로 평가됐다. 유럽연합은 94.7%, 일본은 86.4%, 중국은 82.6%였다. 직전 평가인 2020년엔 한국은 80.1%로, 중국(80%) 보다 근소한 우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역전을 허용했다. 중국이 한국을 앞지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136개 핵심 기술 중 미래 먹거리를 좌우하는 ‘국가전략기술’ 50개에선 중국과 한국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중국은 86.5%로 한국(81.7%)은 물론, 일본(85.2%)도 제쳤다.

이차전지 세계 1위…우주·첨단바이오·양자 꼴찌

과거 추이를 살펴보면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제자리 걸음, 중국은 성장세, 일본은 하락세로 요약된다. 한국의 평가는 2020년 80.1%에서 2022년 81.5%로 1.4%포인트 상승하긴 했으나, 같은 기간 중국이 2.6%포인트를 끌어올리면서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표를 받게 됐다. 2012년만 해도 일본 93.4%, 한국 77.8%, 중국 67% 수준이었는데, 약 10년 만에 중국이 과학강국이 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2016년부터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 기술은 전기차 배터리같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미국보다 앞선 세계 최고였고, 반도체·디스플레이도 선두권이었다. 하지만 우주항공·해양, 첨단 바이오, 양자, 차세대원자력 등은 5개국 중 꼴찌였다. 첨단 모빌리티와 로봇, 인공지능에서도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수치화된 기술수준은 비슷하지만, 과학 인프라와 연구 지원 등을 고려한 전문가 평가로는 격차가 벌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차세대원자력의 경우, 한국과 중국 모두 83% 수준이었지만, 미국을 따라잡는 데 걸리는 기간은 각각 5년과 4.5년으로 예측됐다. 지금은 엇비슷한 기술력이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앞설 거라는 전망이다. 첨단바이오도 한국과 일본, 중국이 공통적으로 78.1%였지만 일본·중국은 미국과 2.6년, 우리는 3.1년 격차가 났다.

11대 주요 분야별로 보면, 한국의 기술수준은 2020년 대비 9개 분야에서 향상됐다. 하지만 '우주항공·해양'과 '정보통신기술(ICT·SW)' 2개 분야에선 하락했다. 두 분야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분야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매우 도전적인 기술을 평가대상에 새로 편입한 영향이 있다”면서 “우주 관측 센싱, 달착륙·표면 탐사부터 인공지능(AI)인프라 고도화 등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필수 기술”이라고 밝혔다. 현재 갖춘 경쟁력과 무관하게 기술적 중요도만을 기준으로 평가 대상을 선정했다는 의미다.

“더 벌어지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지난해 11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기술력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이고 빠른 정책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전 분야 통틀어 기술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난 우주항공·해양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우주공학 교수는 “우리가 열심히 해도 선진국들이 더 빨리 가는 상황”이라며 “한국은 우주개발을 연구개발(R&D)측면에서 접근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20~30년 더 뒤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투자하는 양자컴퓨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준구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컴퓨터 개발 추이를 봤을 때 큰 전환점에 서 있고, 양자컴퓨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 시대에 기하급수적인 수요를 맞추려면 필요한 기술”이라며 “대기업도 필요성을 느껴 연구팀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10명 미만의 소규모라 큰 진전이 없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차세대 원자력의 대표 격인 SMR(소형모듈원전) 기술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늦어져 발목이 잡힌 사례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본부장은 “미국은 민간 업체가 SMR을 건설하는 단계에 도달했지만, 우리는 부지 결정에만 10~20년 걸린다”며 “설계와 제조 경쟁력만 보면 한국도 가능성이 있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흔들려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