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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째 ‘5000만원’ 예금자 보호한도, 1억으로 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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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예금자보호한도 이슈 재점화

24년째 5000만원에 발이 묶인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늘리자는 한도 상향 논의가 최근 재점화됐다. 그동안 한도 상향의 걸림돌로 꼽던 ‘2금융권으로의 머니무브(자금이동)’를 막기 위해선 업권별 차등 상향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와 눈길을 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예금자보호한도’ 이슈에 다시 불을 지핀 건 여당이 예금자보호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할 것을 총선공약으로 내놓으면서다. 국내 예금자는 금융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예금보험공사에서 5000만원 한도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사는 대신 예금보험공사에 매년 예금보험료를 낸다. 보호한도는 2001년 1월 이후 24년째 금융사별로 1인당 원금과 이자 합쳐 ‘5000만원’에 묶여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 비율은 1.2배로, 미국(3.1배)은 물론, 영국(2.2배), 일본(2.1배) 등 선진국 대비 낮다. 금융당국은 보호한도를 시행령 개정으로 높일 수 있지만, 상향엔 ‘유보적’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예금보호제도 개선 검토안’에서 “앞으로 찬·반 논의, 시장 상황 등을 종합 고려해 상향 여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뜨뜻미지근한’ 입장인 것은 정책 드라이브를 걸기엔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5000만원 보호한도에서 은행권 보호예금자 비율은 97.8%다. 현재 5000만원 넘게 넣어둔 예금자는 10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보호한도를 상향할 경우 편익은 소수(예금자의 2.2%)가 누리게 되지만, 금융사의 예금보험료율 인상 부담은 전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또 시중은행 예금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머니무브가 나타날 위험(리스크)도 금융당국이 고심하는 요인이다. 금융위 연구용역 결과에서 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면 머니무브로 저축은행 예금은 16~25% 정도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1억원 한도 상향에 대한 보완책으로 ‘업권별 차등’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7일 보고서에서 “보호한도를 은행은 상향하되,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은 유지하는 차등 설정이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업권별로 여신관리와 심사 능력에 차이가 있어서다. 특히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은 건설·부동산업종에 치우쳐 대출을 실행한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에 연체율도 뛰었다.

미국 등 선진국도 일부 금융권별로 보호한도에 차등을 뒀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은행의 예금보호한도는 25만 달러(약 3억3330만원)인데, 금융투자사(증권사 계좌의 예수금 등)는 50만 달러로 더 높다. 생명보험사의 보호한도는 10~50만 달러 선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정혜진 입법조사관은 “업권별 차등 설정을 한다면  비은행예금취급기관으로 자금이동, 고위험 투자 확대 등의 부정적 효과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상당수 전문가도 한국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보호한도를 상향하는 방향은 맞다는 의견이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예금자 대부분이 금융사 여러 곳에 쪼개서 묻어두는 현실을 고려하면 상향하는 게 전반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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