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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학장들 "할 수 있는 게 없다"…정부·의료계 갈등 중재 왜 못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6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이동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들은 지난 19일부터 전국 의대생 총 1만8793명 중 65.2%가 휴학을 신청했다. 뉴스1

26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이동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들은 지난 19일부터 전국 의대생 총 1만8793명 중 65.2%가 휴학을 신청했다. 뉴스1

정부가 다음달 4일까지 전국 40개 대학으로부터 의대 정원 신청을 받기로 한 가운데, 의대 학장들은 350명 증원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의대생 휴학과 전공의 사직 등 제자들의 집단행동과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중재 역할에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의대 학장들은 현실적인 교육 여건을 고려해 정부가 추진하는 2000명 증원은 과도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대규모 증원을 희망하는 대학 본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학장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무력감이 팽배한 분위기다. 이대로면 지난해 11월 이뤄진 정부의 수요조사 때보다 내달 4일 취합되는 신청 규모가 더 클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전국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정기총회에는 전체 40개 의대 중 25개교 학장들이 모였다. 의대증원과 무관하게 예정된 정기총회였지만, 자연스레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학교마다 입장과 상황이 달라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자는 뜻을 모으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회의 결론은 ‘2000년 의약 분업 당시 감축됐던 인원인 350명을 되돌리는 수준의 증원이 적절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이었다. 신찬수 KAMC 이사장은 회의 직후 만난 기자들에게 “우리도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면서도 “정원이 10% 이상 늘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에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는 대학에 엄청난 부담이다. 350명은 9.5% 정도 증가라 이를 비껴갈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 이사장은 증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소통하고 있냐는 질문에 “(소통이) 끊어진 지 3~4일 정도 됐다”며 “2000명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는데 무슨 소통의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삭발을 해도 안 될 것 같다. 벽을 치는 기분”이라며 “우리(학장들)가 할 수 있는 건 수업 일정을 조정하고 학생들이 유급 안 당하게 하는 정도인데, 그것도 최대가 3월 16일까지다. 그 이후가 되면 대규모 유급 사태를 막을 힘은 아무도 없다”라고도 했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센트럴 호텔에서 비공개로 열린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정기총회에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센트럴 호텔에서 비공개로 열린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정기총회에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학사운영을 총괄하는 학장들이 증원 관련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는 대학 본부의 총장이 정부에 제출하는 증원 규모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학 본부 입장에서는 증원으로 신입생이 늘어나면 대학 평판 등에서 이점이 많기 때문에 실제 교육 여건을 우선 고려하는 의대와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수도권 A 의대 학장은 “총장은 증원을 무조건 반기기 때문에 학장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큰 숫자를 적어서 제출한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2000명 증원이 ‘의대 의견’이라고 하지만, 이는 학장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 B 의대 학장은 “내년부터 갑자기 2000명을 늘리면 당장 교육 현장에 예상되는 부작용은 끝도 없이 많다”며 “교육 역량과 괴리가 있는 숫자를 적어낸 학교가 많다고 들었지만, 대학 본부가 정한 규모가 무리라 생각해도 학장이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사된 40개 의대의 2025학년도 증원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이었다. 이에 대해 KAMC는 지난 19일 성명서를 통해 “각 대학의 실제 교육여건에 비해 무리한 희망 증원 규모를 제출한 점을 인정한다”며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대학마다 증원 희망규모가 다른 점도 학장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한 지역 소재 의대 학장은 “총회에서 2000명은 무리라는 것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 희망한 증원 숫자를 양보할 수 없다’는 곳도 있었다”며 “지난번 조사된 2000여명보다 더 큰 숫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가 교육을 흔들고 있는 형국”이라며 “2000명 증원이 확정되고 나면 몇몇 학장들은 사퇴할 각오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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