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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복귀 시한 이틀 앞두고 '의료사고특례법' 꺼냈지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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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전공의 달래기용 ‘당근’으로 평가받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안이 힘을 잃는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2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책임·종합보험과 공제에 가입한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사고 위험은 필수의료 기피의 핵심 이유”라며 “환자는 두텁게 보상받고 의사는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소송 위험을 줄여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이 이탈되지 않도록 하는 게 (법 제정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부담을 느끼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과 고액 배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특히 응급·중증·분만 등 필수 의료 행위는 사망 사고가 나도 형을 감경·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공의 복귀 시한(29일) 이틀을 앞두고 정부가 의료계 숙원 해결을 약속하며 전공의 달래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이날 대통령의 ‘강경 발언’과 배치됐다.

2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사가 수술부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2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사가 수술부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이전에도 일부 전공의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류옥하다 전 가톨링중앙의료원(CMC) 인턴 비대위원장은 “법 제정 추진 일정과 관련 예산 등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실현 여부에 의구심이 든다”라며 “특례법은 도입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공의들을 달랠 수는 없다”고 했다.

의료계에선 그간 낮은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지급하는 돈)와 함께 의사 소송 부담이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지난해 10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2017년 신생아 사망으로 담당 의료진들이 무더기 기소됐던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정부가 책임보험 시스템을 잘 만들어 형사 리스크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특례법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복지부가 이날 법무부와 함께 마련한 특례법 제정안 초안에 따르면 의료진이 보상 한도가 정해져 있는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했을 때 의료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해도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할 수 없다.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보험·공제에 추가로 들었다면 환자 의사에 무관하게 기소되지 않는다. 특히 응급·중증·분만 등 필수 분야 의사가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했다면 영구 장애 등 중상해가 발생해도 마찬가지 특례를 적용받고, 사망사고가 나도 형을 감경 또는 면제받게 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중상해의 경우 특례가 적용되면 사법 절차를 아예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사망 시 사법 절차는 진행하되 일반적 사건에 비해 예상되는 형이 감면되도록 했다”고 했다. 이런 특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과 중재 절차 참여를 전제했다. 정부는 또 필수 의료 분야와 전공의 책임보험·공제 가입 보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초안을 바탕으로 29일 공청회를 거치고 국회 입법 과정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보험 가입 여부로 처벌을 면제하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상해를 수반해 교통사고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라며 “의료진이 사망이나 중상해 발생을 방지하고자 위험을 감수하고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한상형 법무부 형사법제과장)라고 설명했다.

사고 발생 시 입증 책임을 의료인이 져야 한다는 환자단체 주장과 관련 박 차관은 “사고 낸 사람이 입증을 하는 입법례는 전 세계에 없다”라면서 “특례를 적용받으려면 중재조정 절차를 수용해야 하는데 이때 전문적인 평가와 감정이 이뤄진다. 환자 입장에서 입증 책임 부담을 상당히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의료계 요구 사항을 서둘러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 복귀 시한을 이틀 앞두고 전공의들에게 명분을 준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는 지난 20일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내놓은 7가지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이기도 하다.

27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한 시민이 의료진의 안내를 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7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한 시민이 의료진의 안내를 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박민수 차관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례법”이라고 강조하면서 “의료 현장에서 제기한 의견을 반영한 것이자 의사단체가 요구한 의사 증원의 전제조건이다. 의료진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보호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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