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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12위→7위지만, 내수 발목에 '저성장' 장기화…잠재성장률도 흔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상점 앞을 행인이 지나고 있다. 뉴스1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한 상점 앞을 행인이 지나고 있다. 뉴스1

12위(지난해)→7위(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달 내놓은 주요 20개국(G20) 중 한국의 경제 성장률 순위(전망치)다. 1년 새 미국·일본 등을 다시 제치며 상대적 위치는 높아졌다. 하지만 절대 수치를 보면 미소짓기 어렵다. 올해 2%를 겨우 넘기면서 3년째 1~2% 선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내수가 수출 발목을 잡는 가운데, 뚜렷한 반등 없는 '저성장' 장기화로 잠재성장률을 지키기도 쉽지 않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27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연초 발표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대 초반에 수렴한다. 22일 한은이 내놓은 수정 전망치는 2.1%로 지난해 11월 발표와 동일했다.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OECD는 2.2%로 예측했다. 이는 1.4%였던 지난해보다 다소 높아졌고, 2021년(4.3%)·2022년(2.6%)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국회에서 "(지난해 성장률은)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가장 좋다"고 밝혔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불안한 부분이 적지 않다. 4개월째 증가세를 보인 수출의 온기가 경제 전반에 퍼지긴 역부족이라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내수 부진이 지난해 11월 전망보다 전체 성장률을 0.1%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수출 개선이 0.1%포인트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해 서로 상쇄됐다. 향후 성장 경로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실제로 한은은 민간 소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9%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에 흔들리는 건설 투자도 -1.8%에서 -2.6%로 더 내려갔다.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속에 내수 부진 신호가 뚜렷해진 셈이다. 올해 성장률 그래프도 상반기 2.2%·하반기 2.0% '상고하저'를 그리면서 뒷심이 떨어질 전망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상 저성장이 '뉴노멀'이 됐다"면서 "내수 침체 등이 심해지면 올해 성장률이 1%대 후반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반등에 성공한 수출도 안심할 수 없다. 대외 의존도 높은 한국을 뒤흔들 글로벌 변수는 여전하다. 배럴당 80달러를 넘긴 국제유가는 중동 등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언제든 치솟을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인플레이션 둔화는 예상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수출과 직결되는 세계 교역 성장률의 올해 전망치도 3개월 새 3.4%에서 3.2%로 떨어졌다.

내년 성장세도 녹록지 않다. OECD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2.1%)이 올해보다 내려갈 거라고 예측했다. 한은 전망치도 건설 투자 부진 등으로 3개월 전과 동일한 2.3%를 찍었다. 2022년 이후 이어지는 저성장 기조가 연장될 확률이 높은 셈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실질성장률을 끌어 올리기도 어려운데, 저출산·고령화와 신성장 동력 약화 등으로 잠재성장률까지 내리막이다. 노동·자본 등을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인 잠재성장률은 경제 기초 체력을 의미한다. 표면적인 성장률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지난해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OECD는 2020년 2.3%였던 한국 잠재성장률이 올해 1.7%로 떨어질 거라고 봤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도 이달 보고서를 통해 2023~2024년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한은은 2%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잠재성장률 2%' 지키기가 당면 과제가 된 것이다.

경제 수장들도 머리를 맞댈 정도다. 지난 6일 만난 이창용 한은 총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 총재는 2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앞으로 어떤 정책을 하느냐에 따라 2% 정도인 잠재성장률이 크게 바뀔 수 있다. 구조적 노력을 통해 어떻게 올릴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최근 보고서에서 "생산성이 OECD 평균 수준에 수렴한다고 가정하면 잠재성장률은 2030년 1.2%, 2040년 0.7%로 낮아질 것"이라면서 "0%대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건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고 밝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결국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노동·연금 같은 구조개혁, 법인세 등의 세제 개편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와 국회가 더이상 늦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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