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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효식의 시선

‘의료=공공재’ 논리가 MZ 전공의에 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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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부장

정효식 사회부장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일주일을 넘기고 장기화하고 있다. 주말까지 100개 대형 수련병원에서 1만34명의 전공의(전체 80.5%)가 사직서를 냈고, 이들 중 대다수인 9006명(72.3%)이 출근하지 않는다. 이 여파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이른바 ‘빅5’ 등 대형병원들은 많게는 40% 입원환자를 줄였다. 특히 중증 암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입원 및 항암치료가 줄줄이 연기되면서 나날이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는다.

전공의 ‘밥그릇’ 발언에 여론 싸늘
인기과-소아과 연봉 4대1 양극화
정부도 필수의료 파격 대책 내야

이런 상황에서 환자를 볼모로 한 전공의 집단행동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서울경제신문 의뢰로 한국갤럽이 22~23일 실시한 휴대전화 면접조사에서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에 76%가 찬성하고 반대는 19%에 그친 것도 이런 민심을 반영한 결과다. 또 국민 다수는 최근 수년간 소아청소년과(소청과)·응급의료 대란 등 필수의료 붕괴를 지켜보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이 사태 초반 전공의들에게 더욱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데는 “의대 증원 반대의 본질은 밥그릇”이란 일부 MZ세대 청년 의사들의 솔직한(?) 속내 고백이 한몫했다.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의대 증원 반대 궐기대회에서 한 내과 1년차 전공의가 “의사가 환자를 두고 어떻게 병원을 떠나냐 하겠지만, 내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의국장(레지던트 4년차)이 17일 단체 대화방에 올린 장문의 사직 편지글 중 “세 아이의 엄마이기를 포기할 수 없기에 소청과 의사를 포기하고 피부미용 일반의를 하겠다”는 부분이 부각돼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그 역시 “소청과 의사의 밥그릇에 뭐가 담겨 있나? 같이 하자고 후배들에게 더 이상 권할 수가 없다”고 밥그릇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500명을 하든, 2000명을 하든 의대 증원 정책은 소청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전공의 지원 미달에 따른) 인력 부족에 임산부 전공의도 임신 12주차 전, 분만 직전 12주 전을 제외하곤 당직 근무를 선다. 필수의료과를 위한 실질적 대책 없이는 세브란스 다음으로 다른 빅5 소청과가 무너지는 데 1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소청과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다.

의료시장(소득) 양극화 문제다. 전공의의 미래인 전문의 소득 상위 인기과와 비인기과 간 양극화는 최근 10년 새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펴낸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의원 표시과목별 연봉 1위인 흉부외과(4억8799만원)는 꼴찌(22위)인 소아청소년과(1억875만원)의 4.5배에 달했다. 2위 안과(4억5836만원), 3위 정형외과(4억284만원), 4위 재활의학과(3억7933만원), 5위 신경외과(3억7064만원), 6위 마취통증의학과(3억4431만원) 순으로 상위 인기과는 소청과보다 두 배 넘게 벌었다. 2010년과 비교해 10년 사이 소득 변화를 봐도 흉부외과는 1억6189만원에서 정확히 3배로 늘고, 안과(90.8%), 정형외과(88.1%), 재활의학(237%), 신경외과(98.6%), 마취통증의학과(234%) 등 상위 인기과 연봉도 급증했지만 소청과 개원의 연봉은 1억2994만원에서 거꾸로 16.3% 줄었다.

전공별 소득 격차가 4대 1 이상으로 커지도록 의료 영리화를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건강보험체계 밖에서 이뤄지는 비급여 시장이 불어나는 데도 뒷짐만 졌다. 건강보험 통제를 받지 않고 병·의원이 자율적으로 수가를 정하는 비급여 진료비는 2010년 8.2조원에서 2021년 17.3조원으로 늘었다. 국민 4000만 명이 건보 급여 대신 민간 실손보험금으로 비급여 진료비의 60% 이상을 지출했다.

실손보험 지급보험금 상위 10대 비급여 진료 항목이 모두 ▶도수치료 등 물리치료 ▶백내장(노안) 수술 ▶비급여 주사제 ▶척추 수술 ▶하지정맥류 등 소득 상위 전공 진료와 직접 연관돼 있다. 또 정부가 눈감고 있는 사이, 빅5를 위시한 상급 종합병원은 물론 2차 종합병원, 지역 병·의원들도 비급여 시장을 활용한 수익 극대화에 앞다퉈 나섰음은 물론이다.

병원들과 선배 의사들이 ‘닥치고’ 영리 의료시장을 키우는 데 앞장서는 상황에서 MZ세대 전공의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었다고, 다른 말로 ‘의료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탓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정부가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생색만 내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이 아니라 파격적인 대책을 갖고 전공의 복귀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