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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9명만 남은 6·25 국군포로 생존자…北인권대사 위문 방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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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1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미 북한인권대사와 청년간 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1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한미 북한인권대사와 청년간 대화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신화 북한인권 국제협력대사와 국방부 당국자들이 26일 국내 생존해 있는 6.25전쟁 귀환 국군 포로 가운데 이대봉(93)씨와 강희열(91)씨의 자택을 각각 위문 방문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귀환 국군 포로 이씨는 1952년 5월 28일 21살의 나이로 입대해 육군 제2사단 32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듬해 6월 28일 국군과 중공군 간 혈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포로가 됐다.

이후 북한 당국에 넘겨진 이씨는 북한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아오지 탄광에서 무려 53년 강제 노역을 했다. 6.13탄광 등에서도 노역에 시달렸다. 이후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자”는 심정으로 탈북을 시도 했고, 천신만고 끝에 2006년 9월 28일 한국으로 귀환했다.

강씨 역시 18살이던 1951년 3월 11일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입대 두 달만인 5월 17일 강원 인제 계선전투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북한 황해남도 신천의 협동 농장에서 노역을 하다가 탈북해 2009년 1월 8일 한국으로 입국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이후 이날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명, 이 가운데 생존자는 9명만 남았다. 이달 21일 귀환 포로 김모 씨가 별세했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실명을 밝히지 않은 김씨 역시 1950년 북한군에 붙잡혀 탄광 노역을 하다가 2003년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의 유해는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이 대사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한 국군 포로들을 더욱 세심하게 예우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재북 국군포로 진상규명과 송환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UN) 등 국제사회와 협력해 국가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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