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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4·10총선을 읽는 세 가지 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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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역사는 하나로 이뤄져 있지 않다. 사건과 국면과 구조가 어우러져 역사를 만든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사건의 역사이고, 산업화 시대는 국면의 역사이며, 자본주의 시대는 구조의 역사다. 이 가운데 역사의 표층은 사건사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 사건사는 국면사와 구조사 안에 놓여 있다. 특히 국면사는 사건사의 주인공인 개인의 사유와 행동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총선 역시 사건사다. 국면사의 코드로 사건사로서의 4·10총선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민주화, 포퓰리즘, 나 홀로 시대
세 국면의 역사 향방 어떻게 될까
정치의 위기를 극복할 미래 경쟁
남은 선거 기간에라도 선보여야

첫째, ‘민주화 시대’라는 국면사. 민주화 시대란 인권을 위시한 민주주의 가치를 사회발전의 ‘마스터 프레임’으로 삼은 시대다. 우리 사회에서는 1987년 6월민주화운동을 통해 민주화 시대가 열렸다. 민주화 시대를 이끈 세력은 학생운동과 사회운동 출신의 ‘86세대’였다. 민주화 시대가 40년에 가까운 현재,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민주화가 여전히 ‘코어 밸류’인지가 하나라면, 86세대가 여전히 주역인지가 다른 하나다. 민주화 시대는 여기서 시대교체와 세대교체와 마주한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는 세대교체 프레임을 앞세우고 있다.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 세대교체는 이미 진행돼 왔다. 세대가 생물학적 나이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일각의 반론이 제시되지만, 지난 40년을 돌아볼 때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부인하긴 어렵다. 외려 이 세대교체론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시대교체론과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문제 제기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가 과연 새로운 미래 비전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민주화 시대의 황혼 아래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세대교체론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둘째, ‘포퓰리즘 시대’라는 국면사. 21세기 포퓰리즘은 20세기 포퓰리즘인 인기영합주의에 상대 세력의 혐오와 악마화라는 반다원주의가 더해진 패러다임이다. 포퓰리즘의 인기영합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그 반(反)다원주의는 정치의 양극화를 강화한다. 나아가 포퓰리즘은 진실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탈진실’ 현상과 결합해 진영 정치를 완성시키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차고 넘치는 진영의 요새들은 구체적인 증거다.

21세기 포퓰리즘이 그렇다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21세기 포퓰리즘에는 ‘기득권 대 국민’이라는 반엘리트주의가 숨 쉬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이 21세기 포퓰리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22년 대선이었다. 보수와 진보는 기득권을 거부하기 위해 여의도 정치권의 아웃사이더들을 대선 후보들로 호명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현재, 반엘리트주의라는 포퓰리즘의 힘은 어느새 녹아 없어지고, 혐오와 악마화 그리고 정치의 감성화라는 포퓰리즘의 그늘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포퓰리즘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또한 자못 궁금하다.

셋째, ‘나 홀로 시대’라는 국면사. 우리 사회가 나 홀로 사회라는 것은 21세기의 사회학적 초상이다. 2022년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34.5%를 차지했고, 그 규모는 750만 가구를 넘어섰다. 나 홀로 사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강제한 비대면 경향으로 일터와 여가에서 한층 강화됐다. 나 홀로 사회의 다른 이름이 개인주의 사회다. 최근 청년세대의 비혼 경향을 지켜볼 때, 개인주의 생활과 문화는 앞으로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청년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다. 나 홀로 청년세대는 정치에 대체로 무관심하다. 2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층의 규모가 60대는 7%, 70대 이상은 6%를 기록한 반면, 20대는 45%, 30대는 31%에 달한다. 나 홀로 청년세대가 어느 정도 투표에 참여할지, 어느 정당에 표를 던질지, 남녀 간 어떤 투표 성향을 보일지는 이번 총선의 향방을 결정할 주요 변수 중 하나다. 과연 그 결과가 어떠할지 또한 자못 궁금하다.

이쯤에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정치란 공동체의 최종 의사결정 영역이다. 정부와 의회가 그 결정을 떠맡고, 시민은 그 결정을 위임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점점 낮아져 왔다는 데 있다. 강성 지지층을 제외하면 정치란 직업정치가들이 품고 있는 욕망의 전쟁터일 따름이다. 대한민국을 리셋하고 리빌딩할 것 같던 2016년 촛불집회 이후 등장한 두 정부가 보여준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리더십의 위기’다. 민주주의 위기와 리더십 위기라는 ‘이중 위기’의 다른 이름은 ‘정치의 위기’다.

사건사의 측면에서 총선은 공천 등 그 풍경이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국면사의 측면에서 총선은 정책도, 비전도, 시대정신도 부재한 위기의 풍경을 초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천을 마무리하면 남은 기간에라도 미래를 향한 경쟁을 본격화할까. 그러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