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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에 뒤늦게 알게된 '친부의 사망'…대법은 혼외자 손들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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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친부의 존재를 모른 채 살던 혼외자가 성인이 돼서야 친부가 이미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됐다면, 사망한 친부를 상대로 친자임을 주장하는 인지청구 소송을 낼 수 있을까. 너무 늦어 안 된다는 친부 쪽 유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대법원은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1998년 A씨는 혼인관계가 아닌 남성 B씨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았다. A씨는 자녀 C씨에게 친부 B씨 얘기를 하지 않았고 홀로 키웠다. C씨가 중학생 무렵인 2012년 B씨가 사망했다. A씨 역시 이 사실을 접했지만 그때도 C씨에겐 말하지 않았다. C씨가 성인이 된 뒤인 2019년에야 사실을 말해줬다.

스물한 살에야 사실은 친부가 있었고 7년 전 사망했단 걸 알게 된 C씨는 곧바로 법원에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자신이 B씨의 친자녀란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해달란 것이다. 이는 B씨의 아내와 자녀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혼인 외 출생한 자녀가 자기 자식임을 확인하는 인지(認知)는 친부 스스로가 원해 ‘내 자식이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임의인지), 자식 쪽에서 ‘내 아버지임을 인정하라’고 주장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있다(강제인지). 후자의 경우 소송을 내야 하는데, 자식이 성년이면 직접 내면 되고 미성년이면 법정대리인이 낸다.

문제는 C씨가 친부가 사망한 이후 시점에 와서 소송을 낼 수 있느냐다. 인지청구소송은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로는 아무 때나 내도 되지만, 그가 사망했다면 기간 제한이 생긴다. 민법상 죽은 사람을 상대로 한 인지청구소송은 ‘그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864조), ‘누가 안 날’로부터 2년인지는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

이에 B씨의 유족들은 B씨의 사망 무렵 C씨의 법정대리인인 생모 A씨가 알고 있었다며 7년이 지나 C씨가 소송을 제기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수원가정법원 1심도 제소 기간이 지났다며 C씨의 청구를 각하했다(2020년 8월). 하지만 같은 법원 2심에서는 1심을 뒤집고 C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2021년 5월). 대법원은 2년 넘게 고민했다. 전원합의체에 올려 모든 대법관이 살펴보기도 했다.

결국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 8일 C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민법 조항엔 빠져 있던, ‘누가 안 날’ 부분은 앞으로 이렇게 채우기로 하면서다. “자녀가 미성년자인 동안 법정대리인이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지 않은 때에는 자녀가 성년이 된 뒤로 부 또는 모의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인지청구는 자녀 본인의 권리로 그 의사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며 “자녀가 미성년자인 동안 법정대리인이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자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인 A씨가 먼저 알고 있었단 이유로 C씨가 인지청구 소송을 못 내게 되는 건 불합리하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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