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허준'으로 떴지만 의료 취약지…산청군수 "의대증원 강력 열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사단체 간 ‘강 대 강’ 대치로 의료 공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선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승화(68) 경남 산청군수는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의료개혁을 강력하게 열망한다”고 밝혔다.

이승화 경남 산청군수의 호소

이승화 경남 산청군수가 지난 23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산청군

이승화 경남 산청군수가 지난 23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산청군

드라마 '허준'으로 떴지만…현실은 의료 취약지

이 군수가 이 같은 발언을 한 배경에는 산청군이 처해있는 현실이 있다. 25일 산청군에 따르면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은 ‘동의보감'을 쓴 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삶을 테마로 한 드라마로 유명하다. 하지만 실상은 의료 취약지다. 의료 취약지는 인력·시설·장비 등 보건의료자원이 부족하거나 의료 이용의 지리적 접근성 및 적시성이 떨어지는 곳을 뜻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실시한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에 따르면, 산청은 기준 시간(60분) 내에 응급의료나 2차 의료(분만·소아청소년과·인공신장실)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인구 비율이 30% 이상이거나 시간 내 의료이용률이 30% 미만인 지역이다.

게다가 노인 인구가 늘면서 의료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산청군의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인구 3만3764명 중 1만3847명이 65세 이상이다. 노인 인구 비율은 41%로,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에 들어선 지 오래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 산청군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 산청군

하지만 산청의 병원급 의료기관은 산청군보건의료원(산청의료원)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진료를 전적으로 공중보건의(공보의)에 의존하고 있다. 공보의는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구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이 때문에 공보의 수가 줄면 진료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보건소도 마찬가지다. 2021년 산청에 배치된 공보의는 25명이었지만, 2022년에는 24명, 지난해에는 21명으로 해마다 감소 중이다. 심지어 지난 2022년 4월에는 산청의료원에서 내과를 담당하던 공보의가 전역했는데, 이후 공보의가 추가 배치되지 않아 내과 담당이 1년 넘게 공석이었던 적도 있었다. 산청의료원을 찾는 일평균 150~200명의 군민 중 절반 이상은 혈압·당뇨·감기 등 내과 환자다.

‘n수 채용은 기본’…의사 모시기 힘든 지방의료원

이에 산청군은 2022년 11월부터 수차례 내과 전문의 채용공고를 띄웠다. 연봉 3억6000만원 등 조건을 내걸었지만, 한동안 지원 문의조차 없었다. 5차례 공고 끝에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에 살던 내과 전문의를 겨우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산청군청 담당 과장이 약 170㎞ 떨어진 충북 청주까지 달려가 ‘삼고초려’하기도 했다.

‘의사 구인난’으로 고충을 겪는 지방의료원은 산청뿐만이 아니다. 오는 7월 개원을 앞둔 충북 단양보건의료원도 4차례 공고 끝에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연봉 4억2240만원+아파트 제공'이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서다. 강원 속초의료원도 지난해 1월 전문의 3명이 잇따라 퇴사해 진료에 차질을 겪다가 4억대 연봉에 응시자격을 완화(전공의 4년 수료자)한 끝에 채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유재등 내과 과장이 진료를 보고 있다. 유 과장은 산청군이 5차례 공고 끝에 채용한 내과 전문의다. 안대훈 기자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유재등 내과 과장이 진료를 보고 있다. 유 과장은 산청군이 5차례 공고 끝에 채용한 내과 전문의다. 안대훈 기자

경남 거제·통영·고성의 ‘지역거점공공병원’인 통영적십자병원은 지난해 ‘연봉 3억100만원·사택 제공’을 조건으로 신경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어, 창원경상국립대학교병원 소속 신경과 교수 2명이 파견와 주 1~2회 정도 진료를 봐주는 형편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9월 기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23곳이 의사가 없어 일부 진료과를 운영하지 않았다.

이 군수는 “해마다 공중보건의 배출은 감소하고 있다. 의사를 모시기 위해 채용공고도 수차례 냈지만 의사들이 지방은 선호하지 않아 지역의료 환경은 위기 단계를 넘어 파괴 수준”이라며 “산청과 같은 의료 취약지의 지역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의사 수를 늘리려는 의료개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