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하루 10번 보건소에 민원하라"...강남 의사들 서로 보복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남구에 사는 A씨는 지난 1월 한 달 동안 470여 차례에 걸쳐 강남구보건소에 민원을 냈다. 모두 '특정 병원 광고가 적법한 심의를 거치지 않은 광고(허위·과대광고)'라며 단속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일부 의사들, 경쟁병원 막는 수단으로 민원 활용 #강남구보건소, 관련 민원 1년새 21.4% 증가

B씨는 민원 한 건을 낼 때마다 300여개 이상의 온라인 링크 주소를 넣어서 보낸다. 여기에는 여러 병원 링크가 동시에 걸려있다. 그리고 300여개 링크를 모두 검토해 달라고 지속해서 강남구보건소에 요구하고 있다.

병원 광고 단속 민원에 보건소 몸살 

심의를 받지 않은 미심의 광고로 강남구보건소에 민원이 제기된 한 치과병원의 온라인 광고. 사진 온라인 화면캡처

심의를 받지 않은 미심의 광고로 강남구보건소에 민원이 제기된 한 치과병원의 온라인 광고. 사진 온라인 화면캡처

서울 강남구보건소가 특정 분야 과도한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 민원은 대부분 치과·피부과·성형외과 등 광고물과 관련해 ‘미심의 광고(허위·과대광고)’라며 단속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23일 강남구청과 강남구보건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916건이던 미심의 광고 단속 요청 민원은 올해 1월 1108건으로 21.4%가 늘었다. 이와 관련 강남구청 관계자는 “허위·과대 광고 관련 민원 신청자는 업체 관계자인 경우가 많다”며 “공익 목적이라기보다는 업체 간 보복성 다툼으로 생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환자 확보를 위한 병원 간 다툼에 강남구보건소가 끼인 형국이다.

일부 의사 민원 독려 
여기다가 일부 의사는 참가자가 1000명이 넘는 오픈 채팅방을 만들고 "여기 있는 분은 하루에 10번 이상씩…."이라며 민원을 독려하기도 한다. 오픈 채팅방에서는 보건소 특정 직원을 언급하며 민원 수용을 압박해야 한다는 대화도 주고받는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런 '민원 폭탄' 배경에는 치열한 시장 경쟁이 있다. 새로 시장에 뛰어드는 병원 측에서는 가격 경쟁력 등을 앞세워 알려야 한다. 반면, 기성 병원은 이런 광고가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치과 임플란트처럼 가격 경쟁이 치열한 분야의 경우일수록 이런 민원이 많다. 병원 광고 관련 민원이 가장 많은 곳이 서울 강남구보건소다. 강남구에는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2815개 병원(2022년 기준)이 몰려있다. 2위인 서초구(1371곳)보다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병원 광고 사전심의 권한은 보건소가 아닌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등에 있다. 강남구보건소 측은 "미심의 광고란 게 확인되면 관련 법에 따라 업체에 1차로 시정 통보하며, 시정되지 않으면 관할 경찰서 고발 조치와 함께 경고,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동일 민원 지속 행위는 처벌될 수도 

비슷한 민원이 집중되면서 업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민원 처리 과정과 결과를 민원인에 일일이 통보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소 직원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2023년 대한의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보건소 노동자 감정노동 상태는 여성 직원의 92.5%가 위험군에 속해있으며, 16%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고 한다. 감정노동 원인 1위는 ‘주민의 폭언 또는 과도하고 부당한 요구’가 꼽혔다.

법무법인 가원의 정만선 변호사는 “현재 의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의료 광고는 그 대상이나 방법·범위가 모호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갈등이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법령과 심의 기준 등에 대한 개정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 변호사는 “다수의 동일 민원을 지속해서 넣는 행위는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