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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심사 탈락, 월급 260만원 중 95만원 내는 월세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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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호 12면

전세사기 후폭풍 1년

예비신랑 김모(31)씨는 경기 남양주 빌라에 무리를 해서라도 전세로 신혼집을 얻을 계획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월셋집을 계약했다. 당초 2억2000만원짜리 투룸 전세를 얻고 싶었지만 소득 부족으로 은행 대출 심사에 탈락하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서다. 결국 월세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95만원짜리를 구했다. 김씨는 “세후 월급이 260만원 정도인데, 절반가량을 월세로 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라도 생기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라고 했다.

2022~2023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전세사기 후폭풍으로 청년·서민층의 주거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전세 사기 사태 이후 보증금을 날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빌라(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 전세시장이 붕괴된 때문이다. 월세 수요가 몰리면서 월셋값은 치솟고 있고, 다시 전세로 돌아가고 싶어도 대출·보증 문제로 그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빌라 등 비(非)아파트의 임대차계약에서 월세 비중은 65.6%로 전년보다 6%포인트 증가했다. 비아파트 임대차 계약자 10명 중 6~7명은 월세로 계약을 맺었다는 의미다. 월세 수요가 몰리면서 월셋값도 상승세다. 1월 전국 빌라 월세가격지수는 102를 기록, 전달보다 0.09% 올랐다. 이 지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6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원룸이라도 월세 50만원 이하 매물은 찾기 어렵고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 투룸은 기본 100만원 이상”이라고 전했다.

강서구는 서울에서 비교적 저렴한 주거지로 젊은 직장인 위주로 인기가 높았지만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는 빠르게 월세로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월세는 치솟고 있다. 빌라 등 저렴한 주택을 원하는 청년·서민층에는 정부가 강화한 전세대출 자격과 전세금반환보증보험 문턱도 걸림돌이다. 프롭테크기업 집토스가 서울·수도권 연립·다세대주택의 임대차계약 실거래가와 주택 공시가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올해 갱신 예정인 빌라 전세계약의 66%가 전세보증 가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이 담보인정비율 100%에서 90%로 강화돼서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금융권은 빌라를 대상으로 한 전세자금 대출 일부를 제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20년부터 부실 위험이 큰 빌라를 대상으로 한 HUG 보증부 전세대출을 제한해왔다.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은 비대면 HUG 전세대출 갈아타기 대상은 아파트와 오피스텔로 제한하거나 아예 온라인 신청은 받지 않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은행이 담보 측정이 어려운 비아파트 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하는 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라며 “하지만 상생금융 차원에서 청년이나 취약차주 등에 대한 일부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의 위축으로 청년·서민 주거 여건이 더 악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빌라로 통칭되는 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에 전세로 살며, 목돈을 마련해 아파트로 상향 이동하는 ‘주거 사다리’가 끊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빌라 전세에 대한 공포감에 주거비 부담이 큰 월세나, 비싼 아파트 전세로 이동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아파트 기피현상으로 청년층의주거비 부담이 늘고, 단계적으로 주거를 상향하는 기회마저 멀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빌라 공급이 위축되면서 청년·서민층의 주거불안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다세대·연립주택 인허가는 1만4785가구에 그쳤다. 전년 대비 무려 70% 가까이 급감했다. 고준석 연세대 교수는 “전세사기의 온상이라는 시장의 위험을 제거해줘야 빌라 등 비아파트시장이 살아나 전월세 가격도 안정화될 것”이라며 “강력한 임대차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청년·서민층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를 통해 다양한 주거 형태가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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