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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숙식 교수 "전공의, 응급실마저 떠나…안 돌아올 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대병원 신용범 교육연구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이 지난 22일 본인의 연구실에서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운 병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신 교수는 20일부터 병원에서 숙식하며 24시간 대응중이다. 송봉근 기자

부산대병원 신용범 교육연구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이 지난 22일 본인의 연구실에서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운 병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신 교수는 20일부터 병원에서 숙식하며 24시간 대응중이다. 송봉근 기자

“응급실은 비어 있어야 환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25병상 중에 벌써 8병상이 차 있습니다.”
신용범(53)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전공의 집단 사직 3일째인 지난 2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장기화하면 응급 환자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응급실에 온 환자는 곧장 처치를 받은 뒤 입원하는 게 통상 절차다. 신 교수는 “전공의들 공백에 입원하지도, 응급실을 떠나지도 못한 채 10시간 넘게 응급실에 머무르는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간이침대 놓고 24시간 대기

신 교수는 전공의들이 출근하지 않은 지난 20일부터 병원에서 숙식했다. 연구실 한쪽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자고,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24시간 ‘응급 콜’에 대응하고 있다. 근육ㆍ루게릭병 환자를 포함해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가 병원에 실려 오면 곧장 그의 전화가 울린다. 신 교수는 “호흡 장애 환자는 보통 의식도 희미해진 상태로 도착한다. 호흡기를 달아 이산화탄소를 빼내고, 의식 회복을 돕는 처치를 많이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나누면서도 언제 울릴지 모를 콜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부산대병원 신용범 교육연구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의 연구실. 신 교수는 20일부터 병원에서 숙식하며 24시간 대응 중이다. 송봉근 기자

부산대병원 신용범 교육연구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의 연구실. 신 교수는 20일부터 병원에서 숙식하며 24시간 대응 중이다. 송봉근 기자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인 신 교수는 전공의 ‘무사 귀환’에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병원에선 전공의 244명이 대부분 사직서를 낸 채 복귀하지 않고 있다. 부산대병원 전체 의사의 43%에 달한다.

신 교수는 전공의들이 ‘여지’를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는 걸 앞선 파업 때와 가장 다른 점으로 꼽았다. 그는 “과거 파업 땐 응급ㆍ중환자ㆍ분만ㆍ수술실 네곳 만큼은 전공의가 교대 근무를 하면서 지켰다. 이번엔 이마저 없이 떠났다”고 했다. 이어 “응급실 등에 근무함으로써 전공의들은 위급 환자를 지키고, 처벌 등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어 “구속수사나 출국금지와 같은 방식으로 압박만 이어지면 전공의들이 정말 ‘사직’을 선택하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많은 교수가 무리해가며 환자 곁을 지키려고 한다. 처벌만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는 현장을 지키는 교수들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부 지침에 따라 병원은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사실 수리할 수도 없다. 43%의 의사를 일시에 잃으면 병원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복귀요청, 오히려 자극할 수도… 중재자 절실”

전공의 공백에 따라 병원이 ‘조기 퇴원’을 권유한다는 등의 논란에 대해 신 교수는 “중요 수술 등 처치는 3차 병원에서 할 수 있다. 이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회복과 퇴원은 2차 병원을 거쳐서 하는 게 바람직한 체계”라며 “현재로썬 3차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회복ㆍ퇴원까지 하게 되면 정말 급한 다른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대학병원에서 수술한 뒤 2차 병원 전원을 권유받으면 환자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송구하게 여긴다. 하지만 계속 대학병원에서 치료해야 할 환자를 돌려보내는 일은 결코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지난 20일 오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대국민 호소문이 부착돼 있다. 송봉근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집단 행동을 시작한 지난 20일 오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대국민 호소문이 부착돼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파업 때 부산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수많은 환자분이 수술ㆍ시술과 항암 치료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신다”며 간호사 복귀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하지만 이번 전공의 사직 국면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에 대해 신 교수는 “전공의는 피교육생이면서 근로자이며, 주 80시간 가까운 격무에 시달린다. 지금의 전공의들은 이 같은 격무와 박봉 등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교수들에게도 엄청난 불만을 품고 있다”고 했다. 이어 “복귀를 촉구하는 게 오히려 전공의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낼까 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 되면 신중히 논의해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흘째인 지난 22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손을 맞잡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흘째인 지난 22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손을 맞잡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확대를 둘러싸고 ‘강대강’ 대치만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신 교수는 “과거 파업 등과 달리 타협점이 전혀 보이지 않아 걱정된다. 상황을 중재할 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어 “교수들이 전공의 공백을 메우며 무기한 버틸 수 없다. (이 상황이) 길어지면 불행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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