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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맨도 "그게 뭐죠?"…수십억 쓴 자전거 주차장 흉물 됐다

중앙일보

입력

수유역에 위치한 자전거 주차 타워. 40억여원을 들여 2010년부터 운영 중인데 현재는 이용자가 적어 2개 층만 운영하고 3층과 지하층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 신혜연 기자.

수유역에 위치한 자전거 주차 타워. 40억여원을 들여 2010년부터 운영 중인데 현재는 이용자가 적어 2개 층만 운영하고 3층과 지하층은 운영하지 않고 있다. 신혜연 기자.

21일 오전 11시쯤 찾아간 서울 강북구 수유역 자전거 주차 타워는 방문객 한 명 없이 썰렁한 모습이었다. 입구에 위치한 자전거 수리 시설 직원 1명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흡연을 하는 시민들만 건물 주변을 서성였다.

2010년 강북구가 40억원을 들여 설치한 수유역 자전거 주차 타워는 지하와 지상 1,2,3층, 옥상까지 총 750대를 주차할 수 있지만, 이날 확인해보니 3층부터는 자전거가 절반도 채 차 있지 않았다. 이곳은 내년 10월이면 문을 닫을 예정이다. 수유역 자전거 주차장을 운영하는 강북구 도시관리공단 측은 “자전거 주차 타워 이용률이 30%를 밑돌지만, 수유역 인근 자전거 무단 주차 민원은 계속되는 상황”이라며 “유지비 때문에 더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공단 측은 3시간 이상 자전거 주차 시 500원, 월정액 9000원을 받지만, 이용률이 낮아 유지가 힘든 게 폐쇄 이유다.

수유역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수십억 원을 들여 설치한 자전거 주차장들이 이용률 저조로 문을 닫고 있다. 일부는 고장 난 채로 방치되고, 흉물처럼 남겨져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영등포구는 오랫동안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돼 ‘흉물 논란’이 일었던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을 폐쇄했다. 이 자전거 주차장은 2010년 지자체와 코레일에서 7억 원을 투입해 만들었지만 잦은 고장으로 몇 년간 멈춰있었다.

서울 송파구의 상황도 비슷하다. 2019년 서울시가 총 70억여원을 투입해 만든 서울 9호선 역사 인근 10곳의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은 이 중 6곳이 고장으로 운영 불가 상태다. 그런데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을 설치한 제작업체에서 기술 제공을 거부하면서 수리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서 서울시로부터 운영을 이관받은 서울교통공사 측은 제작업체를 상대로 지적재산 사용권 회수 등 민·형사 소송을 2022년부터 진행 중이나 재판은 장기화하고 있다. 그나마 작동 중인 4곳의 주차장 역시 이용률이 1%에 그친다. 가장 이용률이 높은 올림픽공원 주차장도 4%를 기록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따릉이, 전동킥보드 등 대체 수단이 등장하며 자전거 주차장 이용률이 현저하게 줄었다”며 “올해 중으로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하는 등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해 판단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석촌역에 위치한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 입구가 가림막으로 막혀있고 그 앞으로 자전거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다. 서울시가 1개당 5억~10억원을 투입해 설치한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 10곳 중 6곳이 고장나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신혜연 기자.

서울 송파구 석촌역에 위치한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 입구가 가림막으로 막혀있고 그 앞으로 자전거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다. 서울시가 1개당 5억~10억원을 투입해 설치한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 10곳 중 6곳이 고장나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신혜연 기자.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는 서울시 송파구 거주민 A(60)씨는 “한 번도 기계식 주차장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며 “자전거는 차로 갈 수 없는 좁은 길까지 들어갈 수 있는 편리성 때문에 이용하는 건데, 주차장이 조금만 멀어도 굳이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비싼 예산을 들여 주차 타워를 세우는 건 예산 낭비”라고 했다. 실제로 21일 송파구 인근을 직접 돌아보니, 인근에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단 주차된 자전거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길가에 무단 주차된 자전거들. 서울 송파구에는 총 10개의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이 위치해 있지만 홍보 부족, 고장 방치 등의 문제로 이용률이 1%대로 저조한 상황이다. 신혜연 기자

길가에 무단 주차된 자전거들. 서울 송파구에는 총 10개의 기계식 자전거 주차장이 위치해 있지만 홍보 부족, 고장 방치 등의 문제로 이용률이 1%대로 저조한 상황이다. 신혜연 기자

전문가들은 ‘자전거 주차’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개선과 함께 자전거 주차장의 접근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송파구에서 직접 운영 중인 잠실역 기계식 자전거 주차 타워. 신혜연 기자

서울 송파구에서 직접 운영 중인 잠실역 기계식 자전거 주차 타워. 신혜연 기자

이석현 중앙대 실내환경 디자인전공 교수는 “아직 국내에선 자전거를 주차장에 둬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며 “자전거를 방치하는 문화를 바꾸려면 선진국처럼 민관 협력하에 건물 내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자전거 주차 공간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원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도 “자전거 주차장 이용률을 올리려면 사용 편의성이 전재가 돼야 한다”며 “네덜란드처럼 역사 안에 자전거 주차공간이 있고, 온라인으로 빈 곳이 몇 개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 자전거 주차 시스템이 잘 돼 있다면 자전거 주차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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