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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인텔 ‘1.4나노 파운드리’ 선언…위기 맞은 한국 반도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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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차세대 파운드리 로드맵을 소개하고 있다. 새너제이=박해리 기자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차세대 파운드리 로드맵을 소개하고 있다. 새너제이=박해리 기자

“반도체 80% 생산하는 아시아 비중 낮추겠다”

기업 노력으론 한계…정부 정책 뒷받침돼야

인텔의 역습이다.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 호기로운 도전장을 던졌다. 올해 안에 2나노미터(㎚·1㎚=10억분의 1m)와 1.8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도입하고, 2027년 ‘꿈의 공정’으로 불리는 1.4나노 초미세 공정에서 칩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1.8나노 공정 고객사 4곳을 확보했다고 공개했다. 21일(현지시간) 열린 ‘인텔 파운드리서비스(IFS) 2024’ 포럼에서다.

인텔의 선전포고는 충격적이다. 2나노와 1.8나노 도입 시간표는 내년에 2나노급 양산을 목표로 하는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를 앞지르는 것이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1.8나노 칩은 TSMC의 처리 속도를 능가할 것”이라며 자신감도 드러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게임 체인저로 여겨지는 1.4나노 공정 양산 시기(2027년)는 TSMC·삼성전자와 같다.

인텔의 참전에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57.9%)와 삼성전자(12.4%),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6.2%), 대만의 UMC(6%), 중국의 SMIC(5.4%) 등이다. 겔싱어 CEO는 “현재 아시아 특정 지역에서 반도체의 80%가 생산되는데 이를 미국·유럽 50%와 아시아 50%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 생산 물량의 30%를 빼앗겠다는 말이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의 경기 회복 부진에다 파운드리에서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인텔의 추격은 한국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인텔의 선언이 무서운 건 든든한 우군이 있어서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은 전폭적이다.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약 2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인텔에도 100억 달러(약 13조2900억원)를 지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기업도 인텔을 밀어주고 있다. 실제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는 “인텔의 최첨단 공장 중 한 곳에서 생산할 칩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삼성전자도 영국의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인 ARM과 협력해 3나노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국가 대항전’인 반도체 격전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 AI의 등장으로 격변의 시기를 맞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압도적인 기술력 확보를 위한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다. 반도체 재건의 기치를 내건 일본은 외국 기업에 12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일본 TSMC 구마모토 공장은 365일 24시간 공사로 20개월 만에 준공했다. 촌각을 다투는 경쟁의 현장에서 미적댈 시간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