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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민의힘 현역 의원 돌려막기는 선거구민에 대한 무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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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역 일꾼 뽑아 준 의원을 설명도 없이 딴 데 돌려

선수 포지션 마구 재배치가 시스템 공천일 수 없어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돌려막기’가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부산진구갑의 서병수 의원을 부산 북-강서갑으로,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의 김태호 의원을 양산시을로 돌리더니 이번 주에는 박진(강남을) 의원을 서대문을로 돌려막았다. 조해진·김영선 의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역은 아니지만 얼마 전 강서을 공천에서 배제했던 김성태 전 의원을 인근의 서울 서부권 지역구로 옮기는 방안을 당 지도부가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이를 험지로의 재배치, 이기기 위한 결단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박진 의원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22대 총선 서대문을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진 의원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22대 총선 서대문을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공천 과정은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잡음이 크지 않은 건 맞다. 다만 이처럼 선거구 공천을 축구 선수 포지션 바꾸듯 돌려막기로만 해결하는 건 문제다. 무엇보다 해당 선거구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역 일꾼으로 애써 뽑아놓은 인물을 아무 설명 없이 옆 동네로 돌려놓는다면 표를 행사했던 유권자로선 당혹스러울 뿐이다. 후보도 마찬가지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현안들이 원점에서 다시 리셋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자신의 선거구를 위해 임기 내내 헌신할 수 있는 풍토가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 예전엔 당적을 수시로 바꾸는 정치인을 ‘철새’라 했지만 이대로라면 선거구가 수시로 바뀌는 신종 철새가 양산된다.

국민의힘이 돌려막기에 나선 배경은 자명하다. 무소속 출마 혹은 제3지대 신당 합류를 최대한 막아보기 위함이다. 국민의힘은 당초 권역별 하위 10%에 대해 컷오프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제 “이미 지역구를 옮긴 분은 해당이 안 된다”고 입장을 바꿨다. 하위 10%에 포함돼도 당의 재배치 요청을 수용하면 공천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아직 지역구 현역 의원의 컷오프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러니 잡음은 없지만 쇄신과 감동도 없다는 이른바 ‘3무(無) 공천’이란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런 지적에 “잡음이 아니라 감동이 없다는 정도의 비판이라면 그건 나름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언론에서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른바 친윤 후보에 대한 특혜를 배제하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이전 총선 때처럼 40% 이상 현역 물갈이하란 얘기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지역의 대표성을 강조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했다. 그런 현실에서 현역 돌려막기라는, 주요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공천만큼은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10년 넘게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토머스 오닐은 “모든 정치는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중앙정치에서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의 기본 덕목은 지역을 잘 알고 촘촘하게 챙길 수 있는 능력이란 얘기다. 공천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