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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균 아파트값 하락하는데…초고가 아파트는 고공행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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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경기 무관 ‘그들만의 리그’

서울 아파트값이 12주 연속 하락하는 등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수십억원대 ‘초고가’ 아파트에서는 역대 최고가 거래가 나오고 있다.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삼성’ 전용 175㎡도 지난달 9일 90억원(33층)에 팔리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7월 같은 면적이 62억원(10층)에 거래됐는데, 반년 만에 가격이 28억원이나 뛴 것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전용 206㎡가 지난달 12일 역대 최고가인 97억원(3층)에 거래됐다. 같은 면적이 2022년 11월 94억5000만원(8층)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2억5000만원 더 비싼 가격이다.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3차’ 전용 214㎥도 지난 2일 역대 최고가인 58억원(58층)에 손바뀜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노후 단지에서도 최고가 거래가 나왔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2차 전용 196㎡는 지난 8일 80억원(13층)에 거래됐는데, 2021년 1월 거래된 55억원(6층)보다 25억원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시장 전반의 분위기는 다르다. 고금리 장기화에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침체에 빠져있다. 이날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주간매매가격지수는 일주일 전보다 0.03%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주 조사(0.00%) 이후 12주 연속 하락이다.

경기 침체 중에 명품 소비가 늘어나는 것처럼, 부동산 시장 전반의 침체에도 ‘한강 변’ 초고가 아파트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부동산 시장의 수요층을 세분화해보면 고소득 자산가를 중심으로 한 초고가 주택 수요층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경제 상황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돼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매도자는 원하는 가격을 받기 어렵고, 매수자는 좀 더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찾기 때문에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하지만 초고가 아파트 시장은 다르다. 희소성이 높은 단지를 소유하고자 하는 자산가의 수요는 시장 침체기에도 일정 수준 유지되기 때문에, 매도자가 가격을 내릴 유인이 적다. 압구정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압구정 아파트의 재건축 추진에 속도가 붙으면서 호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막차라도 타겠다’는 심정으로 높은 호가에 계약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초고가 아파트값 강세를 ‘한강 조망권 프리미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 최고가를 경신한 아파트 대부분은 강남·용산·서초 등 한강변에 위치했다. 지난해 한국부동산학회가 낸 ‘한강 조망권이 아파트 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란 논문을 보면 한강 조망률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실거래 가격이 0.5%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서는 조사 가구 중 한강 조망률(한강 조망의 비율로 3차원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측정)이 가장 높은 가구가 한강 조망이 전혀 없는 가구에 비해 실거래가격이 전용면적 1㎡당 503만2000원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을 금리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자산가인 초고가 아파트 수요층은 현재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덜해 시장 전반의 분위기와 다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며 “늦어도 올해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부동산 시장 전반이 살아날 것으로 보고 이들이 선제적으로 매수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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