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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방심위인가, 국보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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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광운대 교수

진중권 광운대 교수

정치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언론을 장악하면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 이 생각의 바탕엔 국민의 의식이 언론이 먹여주는 밥을 그저 받아먹기만 하는 구강기 아동 수준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근데 국민은 최소한 너희들보다는 똑똑하다. 정말 국민이 그런 수동적 수용자에 불과하다면 지난 선거들의 결과는 설명이 안 될 게다. KBS니 MBC니 TBS니 모두 민주당 정권이 장악해 노골적인 편파방송을 했는데, 왜 민주당 정권이 큰 선거에서 연거푸 세 번이나 패배를 했겠는가?

1심도 안 끝난 ‘바이든, 날리면’
언론사 윽박질러 반성문 받아내
과잉충성은 정권에 부담만 줄 뿐
지난 정권이 밟았던 전철 그대로

사실 민주당의 패배에는 민주당에 편향된 당파적 언론들의 공이 컸다. 민주당에 빨간 불이 들어왔는데도 이들 언론이 이 경고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민주당 편든 결과, 민주당이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민심의 바다로부터 멀어진 게 아닌가.

뭔가를 보고 배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지난 정권이 밟았던 전철을, 지금은 국민의힘 정권이 그대로 따라 밟고 있다. 방식도 매우 조악하다. ‘방심위’나 ‘선방위’의 심의를 들여다보면 그 조악함이 국보위의 언론검열을 연상시킨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겠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공약을 비판했다가 나도 심의에 걸렸다. ‘국회의원이 싫은가. 그럼 간단하다. 국민의힘부터 해산하면 된다.’ 정치혐오에 기댄 실없는 공약을 비판하느라 과장법 좀 썼더니 징계의 사유가 된단다.

징계의 근거도 황당하다. 의원 정수 축소는 ‘국민의 6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아니, 그러니까 공약으로 내걸었겠지. 나는 국민의 60% 이상이 지지한다는 그 공약을 비판한 것이다. 40% 이하 국민은 입 다물고 살아야 하나?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강경 발언에 대해 “윤석열 정권이 북한에 명분을 준 것”, “자기들이 주적이라고 먼저 규정한 것”이라 평한 것도 문제 삼았다. 이것은 그냥 개인의 의견인데, 정부의 공식 입장에서 벗어나는 의견은 징계를 받는다. 김정은이 “우리의 주적은 남한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점잖 떨고 있을 때 괜히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이라 적어넣음으로써 외려 남한이 호전적이라는 전도된 인상을 주는 게 잘하는 짓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9·19 합의도 우리가 먼저 폐기했다’는 발언도 문제로 삼는다. 먼저 북한이 3000여회 위반을 했다나? 위반과 파기는 다르다. 합의가 유지되고 있으니 위반도 하는 거지. 정 거슬리면 우리도 같은 강도로 위반하면 될 일. 선제적으로 합의의 (부분)정지를 선언할 일은 아니다.

왜 쓸데없이 그자들에게 명분을 주느냐는 비판. 정부의 공식입장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안 되는가? 내가 내 의견을 말하는 게 징계사유가 되어야 하는가?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대통령의 정부에서 꼭 이래야만 하는가? 아무튼 이게 조국 전 장관에게 “진보를 참칭하는 친검찰 친윤석열 인사”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 이 정권 아래서 겪은 일이다. 그러니 나보다 민주당에 가까운 다른 방송 패널들은 이보다 험한 일들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바이든, 날리면’ 소동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게 굳이 법정까지 갈 일인가? 게다가 왜 이렇게 급한가. 이제 1심이 끝났을 뿐인데, 그걸 징계의 근거로 삼는다. 그래서 징계를 내렸는데 상급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면 어쩔 건가?

MBC는 그렇다 쳐도 그걸 받아서 보도한 매체들까지 줄징계를 하고, 심지어 사실관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도 힘으로 윽박질러 언론사들로부터 반성문(?)을 받아낸다. 완장들의 이 과잉 충성.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믿을 게다. 김어준도, MBC도, 그 밖의 친민주당 매체들도 자기들의 편파보도가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과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될 거라고 굳게 믿지 않았을까? 그런데 결과는?

국민은 언론에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는 바보가 아니다. 언론을 장악해 ‘땡윤’ 뉴스를 국민의 눈과 귀에 쏟아대면 그들이 제 편이 될 거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완장질은 쓸데없이 정권에 부정적 이미지만 덧씌울 뿐이다.

얼마 전에 방심위에서 4개 방송사에 모두 1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적 있다. 그때 그 민원을 넣은 이들 중엔 방심위원장님의 아들, 동생 부부, 처제와 동서, 조카가 끼어 있었다. 방심위가 위원장님의 ‘가업(家業)’인 모양이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징계를 받은 그 방송에서 나는 민주당을 향해 그보다 몇 배 더 표독한 표현을 사용해 왔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그 발언들은 한 번도 심의에 오르지 못했다. 방심위, 선방위에서 거기에도 관심 좀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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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