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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2000명 늘린다는데...2년간 1명 지원, 국과수 법의관 한숨

중앙일보

입력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라고 적힌 원훈석(院訓石)이 입구에 놓여 있다. 이영근 기자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라고 적힌 원훈석(院訓石)이 입구에 놓여 있다. 이영근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1일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 6명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지난달 1명을 겨우 뽑긴 했지만, 지난해 두 차례 법의관 모집 공고에선 지원자가 없었다. 2년 동안 채용 인원이 단 1명에 그친 것이다.

의대생 증원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과수도 법의관이 턱없이 모자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과수가 지난해 수사기관으로부터 의뢰받은 부검 건수는 8059건이다. 그러나 국과수 법의관은 33명으로 정원(49명)을 한참 밑돈다. 1인당 한 해 244구의 시신을 부검하는 셈이다. 한 전직 국과수 법의관은 “수사기관 관계자를 만나 자료를 검토하고, 법정 증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쉬는 날이 하루도 없는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민간의사에게 일부 부검을 맡기면서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2022년 기준 국과수 의뢰 부검 33%를 촉탁된 외부 의사가 처리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실무 핵심축인 허리 연차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지난 5년간 9명이 정년을 채우기 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양경무 국과수 법의학부장은 “모래시계형 인력 구조가 된 지 오래됐다”며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나가면서 업무, 멘토링 등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분원은 법의관이 1~2명인 곳이 많은데, 사직이나 휴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하면 누군가가 갑자기 비연고지로 전근 가야 하는 부담감도 크다”고 덧붙였다.

인력난의 원인으로는 낮은 처우가 꼽힌다. 국과수 법의관은 의사 면허증이 필수다. 국과수 ‘5급 전문관’으로 채용되면 초봉은 8000만원 수준이고, 10년 차 이상 4급 ‘수석전문관‘은 1억원 가량을 받는다. 의사 평균 연봉 2억3070만원(202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한참 못 미친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또래에 비해 적게 버는데 예전처럼 사명감만 강조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했다.

법의학 인재풀도 씨가 마르는 중이다. 법의관과 법의학자 대부분은 병리과 전문의 출신이다. 하지만 기피 과로 분류되는 병리과 전공의 지원율은 매년 미달이다. 보건복지부 따르면 병리학 전공의 지원율은 2022년 38.8%, 2023년 50.6%, 2024년 60%로 집계됐다. 이는 응급의학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와 비슷한 수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의학자는 “과거에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법의학을 공부하겠다는 ‘괴짜’가 종종 나왔지만, 최근엔 학부모 입김도 센 데다 모범생이 대다수라 법의학에 투신하는 학생이 적다”고 했다.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망자가 늘면 부검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며 “필수의료 성격을 갖는 법의학이 고사하면 억울한 죽음도 늘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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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권한도 법의관의 의욕을 꺾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과수 근무 경험이 있는 김윤신 조선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부검을 하는 과정에서 현장을 반드시 확인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경찰 등 유관 기관과 협조가 잘되지 않아 뜻이 좌절될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김 교수는 “뜻을 갖고 입사한 법의관도 이런 문제들에 계속 부딪히면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경무 부장은 “지금 제도에선 사망 신고가 되지 않은 망자의 생전 진료 기록도 확인할 수 없다”며 “검시 시스템이 지금보다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법의학계에선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정원 증원이 현실이 되더라도 “획기적인 변화는 없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김유훈 대한법의학회장은 “범죄 연관성을 밝히는 사법 부검 외에도 법의학은 국민보건영역 전반에 걸친 기여를 하지만, 산 자들이 먼저란 인식이 강해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고 진단했다.

양경무 국과수 부장은 “국과수에 지원한 이들 대부분은 10년 가까이 수련한 전공의”라며 “공무원 간 형평성 문제가 있어 또래 의사 수준 급여는 줄 수 없더라도, 능력·경력 등을 고려하면 4급 수석전문관으로 채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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