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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은 한화를 위해 팔꿈치 수술을 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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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MLB)에서 몇 년 더 뛰려고 팔꿈치 수술을 한 게 아닙니다. 한화 이글스에서 잘하고 싶어서 수술했어요."

한화 소속으로 KBO리그 마지막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2010년의 류현진. 중앙포토

한화 소속으로 KBO리그 마지막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2010년의 류현진.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계약이 끝나고 귀국한 류현진(36)은 주변에 이런 심정을 털어놨다. 아직 한국 복귀를 결심하지도, 한화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류현진은 2022년 6월, 30대 중반의 나이에 두 번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나이가 적지 않아 앞선 수술 때보다 위험 부담이 컸지만, 큰 고민 없이 빠르게 수술대에 올랐다. 그 결단의 목적이 '빅리그'가 아닌 '한화'였음을 분명히 했다.

류현진의 이런 마음은 곧 한화의 후배들에게도 전해졌다. 지난해 신인왕 문동주는 "류현진 선배님이 한화에서 뛰려고 팔꿈치 수술을 받으신 거라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벅찼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며 "나는 팀 후배 이전에 류현진 선배님을 응원하는 야구선수이자 팬이다. 옆에서 많은 걸 보고 배우고 싶어서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2022년 3월 MLB 직장폐쇄로 스프링캠프 출국이 늦어지자 한화의 거제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함께 훈련하는 류현진. 연합뉴스

2022년 3월 MLB 직장폐쇄로 스프링캠프 출국이 늦어지자 한화의 거제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함께 훈련하는 류현진. 연합뉴스

한화를 향한 류현진의 애정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크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됐을 때, 그의 마음은 이미 한화로 기울어져 있었다. "늦어도 2025시즌 전에는 무조건 돌아온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이유는 하나다. "내게 힘이 남아있을 때 한화에 돌아와야 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MLB에서의 다년 계약은 선택지에 없었다. 머리는 MLB를 떠올렸지만, 마음은 한화를 향했다. FA 협상 전 에이전트에게 "2년 계약이나 1+1년 계약은 하지 않겠다. 계약 기간은 1년, 금액은 1000만 달러 이상이어야 사인하겠다"고 못 박았다. 실익이 없다면 굳이 빅리그에 남아 한화 복귀를 미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FA 신분으로 귀국하며 공항 인터뷰에서 활짝 웃는 류현진. 연합뉴스

지난해 말 FA 신분으로 귀국하며 공항 인터뷰에서 활짝 웃는 류현진. 연합뉴스

류현진은 거취를 고민하면서 한 투수의 이름을 언급했다. 일본 히로시마 카프에서 은퇴한 구로다 히로키다. 구로다는 1997년부터 11년간 히로시마의 에이스로 활약하다 2008년 MLB에 진출해 LA 다저스(4년)와 뉴욕 양키스(3년)에서 뛰었다. 양키스와의 계약 마지막 해인 2014년에도 11승 9패, 평균자책점 3.71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 FA가 된 그에게 친정팀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이 거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39세가 된 구로다는 그 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친정팀 히로시마로 돌아왔다. "내가 언제까지 공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 던질 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지금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구로다의 선택은 일본 프로야구뿐 아니라 MLB에도 큰 울림을 줬다. 결국 그는 약체였던 히로시마를 2016년 25년 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은퇴했다.

류현진 역시 "구로다처럼 내 힘으로 한화의 우승을 이끄는 게 오랜 꿈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은퇴를 앞둔 시기에 힘이 다 떨어진 채로 돌아와 한화 팬들 앞에 다시 서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한화의 전력에 보탬이 될 때,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류현진의 거취 결정에 영향을 미친 구로다 히로키. 교도=연합뉴스

류현진의 거취 결정에 영향을 미친 구로다 히로키. 교도=연합뉴스

류현진은 최초의 KBO리그 출신 메이저리거였다. 빅리그에서 보낸 11년간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나기도 했고, 부상과 싸우느라 지치기도 했다. 찬란하고 명예로웠지만, 그만큼 외롭고 고되기도 한 길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 그는 한화를 잊지 않았다. 시차가 다른 한화 경기를 매일같이 챙겨봤고, 거의 매년 겨울 개인 훈련지에 한화의 후배 투수들을 데리고 갔다.

그런 류현진이 이제 다시 한화에 둥지를 틀고 '우승'을 다짐하고 있다. 한화의 절대 에이스가 12년 만에 돌아온다. 한화는 이제 약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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