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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김정은에 자동차 선물…나발니 의문사 이후 브로맨스 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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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 리무진인 ‘아우르스’의 모습.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 리무진인 ‘아우르스’의 모습. AP, 연합뉴스

북한이 20일 관영 매체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러시아산 승용차를 선물로 보냈다고 공개했다. 제재 품목에 해당하는 승용차를 주고 받은 사실을 버젓이 공개한 것은 양 정상 간 '케미스트리'를 부각해 북·러 전방위 협력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외교가에선 최근 북한의 오랜 형제국인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고,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의문사한 뒤 국제적 압박이 커지는 데 따른 여파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동신문은 이날 박정천 노동당 비서와 김여정 당 부부장이 지난 18일 러시아 측으로부터 선물을 전달받았고 전했다. 김여정은 "조러(북·러) 두 나라 수뇌분들 사이에 맺어진 각별한 친분 관계의 뚜렷한 증시로 되며 가장 훌륭한 선물"이라고 언급했다. 신문은 "(김여정이) 김정은 동지께서 푸틴 대통령 동지에게 보내시는 감사의 인사를 러시아 측에 정중히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전용차인 '아우루스' 뒷좌석에 함께 승차한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전용차인 '아우루스' 뒷좌석에 함께 승차한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어떤 승용차를 선물했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자국의 최고급 자동차인 '아우루스'(Aurus)를 김정은에게 선물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에게 아우루스를 선물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 차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아우루스는 무게가 7t에 달하는 장갑차로 각종 편의·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설계와 제작에 17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지난해 9월 방러 당시 푸틴 대통령의 소개를 받으며 뒷자리에 탑승해봤던 차가 아우루스 리무진이다.

북한이 전통적 우방국 쿠바로부터 허를 찔린 가운데 북한의 '승용차 선물 외교' 부각은 북·러 간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새삼 재조명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북한 정권 수립 직후 당시 소비에트 연방 총리였던 스탈린에게 지스(ZIS) 3HC 리무진을 선물받았다. 이후 총리에 오른 말렌코프 등도 고급 승용차를 김일성에게 줬다.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승용차 선물은 러시아 측이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옛 소련) 시절부터 해왔던 오래된 관행이란 점을 강조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 전용차로 보이는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에서 내리는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 전용차로 보이는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에서 내리는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다만 이런 류의 고급 승용차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서 북한으로의 반입이 금지된 사치품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2017년 12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2397호는 운송수단의 직·간접적인 대북 공급·판매·이전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위반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북한의) 안하무인격 태도를 규탄한다"며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책임을 자각하고 국제 규범을 훼손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구체적 차종이나 사진 등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제재 위반 행위라는 점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정보가 없으면 추적도 힘들기 때문이다.

푸틴의 선물 공개는 '자동차광'으로 불리는 김정은의 취향까지 고려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 김정은의 전용차를 독일 B사의 최고급 세단으로 바꾼 정황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다. 비슷한 시기 다른 공개 행사에선 같은 회사의 최고급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에서 내리는 모습을 내보냈다. 김정은의 2016년 9월 수해지역 방문 영상에선 영국 SUV 브랜드의 최상위 모델이 포착됐으며, 2020년 8월에는 김정은이 일본 브랜드의 대형 SUV를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0년 8월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에 직접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SUV 운전석에서 내려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2020년 8월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에 직접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SUV 운전석에서 내려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양 정상이 그간 최첨단 안전·편의시설을 갖춘 최고급 전용 열차를 이용하거나 승마·스키를 즐기는 등 공통의 관심사를 매체를 통해 드러내왔다는 점도 주목한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북·러 양국의 독재자들이 공통 관심사 중 하나인 최고급 차량을 매개로 밀착을 과시하는 모습"이라며 "김정은은 형제국인 쿠바의 배신, 푸틴은 정적인 나발니 사망으로 인한 후폭풍에도 '마이웨이'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러시아가 북한이 제공한 포탄 등 재래식 무기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게 되자 김정은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고급승용차를 선물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러시아 측에 무기를 제공하는 정황은 계속 포착되고 있지만, 반대 급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한의 정보산업·수산·체육 대표단이 19일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전방위로 확대하는 분위기다. 올해로 범위를 좁혀도 최선희 외무상 방러(1월), 러시아 관광객 방북, 노동당 및 농업기술 대표단 방러(2월) 등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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