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술 밀리고 응급진료 차질…정부 "전체 전공의에 진료유지명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빅5 대학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1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빅5 대학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19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이 19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울의 주요 대형병원인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가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일부 병원에서는 당장 이날부터 근무를 멈췄다. 전국 병원 곳곳도 줄사직이 잇따르면서 수술과 치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진료차질이 빚어졌다. 정부는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빅5 병원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빅5 전공의들이 20일 오전 6시 이후로 근무를 중단한다고 예고했으나, 세브란스병원은 소아청소년과·내과 등 대다수 전공의들이 이날 사직서를 내고 바로 진료현장을 떠났다. 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박단 대전협 회장도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사직서를 제출했다. 현장을 무시한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꿈을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며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 병원은 수술을 절반으로 줄이고 파업 상황에 대비했으나, 응급실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수술은 미리 일정을 조정했고 외래 진료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응급실은 축소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어린이병동 1층에서 아들을 돌보고 있던 이모(38)씨는 “아이들이 입원한 병동에 ‘수술이 기약 없이 연기됐다’는 부모들 한숨이 가득하다”며 “의사가 파업하면 누군가의 생명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꼭 이런 식으로 궐기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씁쓸해했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빅5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환자들도 불안감을 토로했다. 대장암 수술을 받기 위해 춘천에서 왔다는 강모(67)씨는 “수술이 미뤄질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수술이나 진료가 한번 밀리면 언제 다시 잡힐지 모르니 파업 상황이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이날 수술을 평소 대비 10% 줄였다. 전공의 근무 중단이 본격화되는 20일에는 30%까지 추가로 줄일 계획이다.

지방 대형병원에서도 사직이 잇따랐다. 부산대병원 전공의 100여명은 이날 오전 사직서를 내고 20일부터 출근하지 않을 예정이며, 동아대병원 전공의 10여명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광주 전남대병원에서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공의 4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조선대병원은 142명 중 10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뒤 20일부터 근무 중단을 예고했다. 이밖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인천 인하대병원, 전북대병원 등 전국 주요 대학병원에서 집단 사직이 줄을 이었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부모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부모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료공백이 빚어지자 정부는 전국 수련병원 221개 전공의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각 수련병원에는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및 필수의료 유지 명령’을,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에는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린 상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답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 후 브리핑에서 진료유지명령에 대해 “말 그대로 현재 하고 있는 진료를 유지해달라는 명령”이라며 “필수의료 유지 명령은 기관에 대해 응급실과 중증 수술 등의 필수의료 기능을 유지하라는 명령이라면, 진료유지명령은 의료인 개인에게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명령 모두 의료법 59조1항에 근거한 것으로, 불응할 경우 1년 이내 면허정지 처분이 가능하다. 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으로부터 전공의들 근무현황을 매일 보고받아 전공의들의 실제 근무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예고한 집단 사직서 제출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예고한 집단 사직서 제출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및 보호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의료계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입장을 잇달아 내놓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대국민 호소문’에서 “우리 의사들은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를 하고 있다”며 “의사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망가뜨릴 것이 자명한 잘못된 정책을 막아야만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장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성명서에서 “2000명은 전국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의 교육 여건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수용하기 불가능한 숫자”라며 2000명 증원 계획 철회 등을 요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의사인력 확충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의료계와 적극 소통하고 필수의료 패키지를 마련하는 등 노력했음에도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을 선택한 점은 유감”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소방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송지침을 적용하고,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진료 시간을 확대할 예정이다. 12개 국군병원 응급실을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 시에는 보건소 진료를 연장하기로 했다. 비대면 진료도 제한 없이 허용할 방침이다. 파업으로 인해 중증·응급치료 거부 등 피해를 입은 환자에게 법률서비스 상담을 제공하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국번없이 ‘129번’으로 전화)도 이날부터 운영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