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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교사가 ‘방검복’까지 입고 출근해야 하는 교육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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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북 고교서 학생이 교사에 “죽인다” 협박 발언

서이초사건 뒤 법 개정에도 교권보호 미흡 여전

전북에서 학생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은 고등학교 교사가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발생했다. 추락한 교권과 보호받지 못하는 교사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전북 교사노조는 지난 16일 “살해 협박을 받는 교사를 보호하라”는 입장문을 냈다. 이에 따르면 해당 학교의 일부 학생이 공개된 장소에서 “(특정 교사를) 칼로 찔러 죽이겠다. 가족까지 죽인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협박은 여러 차례 반복됐고 “우리는 미성년자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니 괜찮다”는 말도 했다.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해당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교사는 걱정하는 부인이 준비한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의 살해 협박에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전북교사노조

전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의 살해 협박에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전북교사노조

사랑과 존경으로 표상되는 사제지간의 도리가 깨진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학생이 선생님을 향해 살해 협박까지 하는 것은 금기를 넘어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학교와 교육 당국의 대응이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피해 교사는 6개월 이상 휴직을 권고하는 정신과 진단서를 받았다. 그러나 학교 측은 병가 신청 수리와 학생 분리 조치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학교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지만, 학생들이 사과하고 싶어 했다는 이유로 경미한 처분이 내려졌다. 이마저 학부모가 반발해 행정 심판이 진행 중이다. 학부모 측은 2년 전 일어난 일을 근거로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그 일도 학교 밖에서 교사가 금연지도를 하던 중 학생이 반발하자 학교로 데려가기 위해 소매를 잡아끈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비롯해 비슷한 사건이 잇따랐다. 교사들이 교권을 보호해 달라며 거리로 나서자, 교육부는 적극적 해결을 약속했다. 교원지위법을 포함한 4대 교권보호 법안이 개정됐고,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학대 행위로 처벌하지 못하게 한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추모 집회에 참석한 3만여 명의 교사들은 교사 처우 개선 및 교권 보호 조치등을 촉구했다. 뉴스1

지난해 7월 2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추모 집회에 참석한 3만여 명의 교사들은 교사 처우 개선 및 교권 보호 조치등을 촉구했다. 뉴스1

하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많다. 교육 당국은 교사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기만 하면 온갖 보고서를 내라며 학교를 닦달한다. 학교 측은 피해를 본 교사를 지원하기는커녕 질타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고립된 교사들은 문제 학생이 있어도 외면하는 게 상책이라며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학교에서 교육을 미루면, 결국 나중에 사회에서 범죄의 형태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북교육청은 서둘러 교권 보호에 나서야 한다. 수사기관도 처리를 미루지 말고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것을 확인하면 즉시 무혐의 처리해야 한다. 아울러 새 학기부터 도입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제가 부작용 없이 현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철저한 사후 관리를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