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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의 시선

법정구속 면한 조국과 사법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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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손익을 따지자면 더불어민주당에 더 불리해 보인다. 그래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2심에서 법정구속하지 않은 게 정치적 판단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자유롭게 활동하게 된 그는 “수십만 개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라 해도 두려움 없이 맞서겠다”며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적 해석이야 어떻든 사법정의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되씹어볼 의미가 있다. 징역 2년으로 1심과 같은 형량이니 관행대로라면 법정구속하는 게 타당했다는 의견이 많다.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의 경우 법률심, 즉 법해석의 정당성을 주로 다룬다. 1, 2심에서 범죄 행위에 대한 사실 판단은 끝난다. 피고인이 재판정을 오갈 필요도 없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징역형의 경우 법정구속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다.

하지만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었고, 대법원은 2021년 법정구속에 대한 예규를 개정했다. 헌법 제12조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구속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형사소송법 제70조는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그리고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2021년 이전 대법원 예규는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고 돼 있어 법정구속을 일반화했다. 새 예규는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법정구속하도록 고쳐졌다. 헌법, 형사소송법과 같은 취지로 불구속재판에 무게를 실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요건만 본다면 조 전 장관을 법정구속하지 않은 게 타당할 수 있다. 재판부는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평성’ 논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 7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가 기각되면서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충분히 방어권이 보장됐으며 죄질이 나쁘고 도주 우려도 있어 법정구속한다”고 밝혔다. 형량이 동일치 않지만 지난해 1월 고(故) 김홍영 검사를 폭행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부장검사가 2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을 선고했는데, 2심에서는 징역 8개월로 형량이 줄었다. 그럼에도 1심과 달리 도주 우려가 있다고 봤다. 지난해 6월, 마약 투약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온 작곡가 겸 사업가 돈스파이크는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기도 했다.

1, 2심에서 모두 징역 2년 실형
방어권 보장 필요 이유 불구속
형사재판 형평성 논란 숙제로

조 전 장관과 달리 다른 이들의 죄가 더 중하고, 도주 우려가 더 있고,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된 상태였나. 조 전 장관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원심이나 이 법원에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거나 그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범죄사실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양형기준상 ‘진지한 반성’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라고 꾸짖은 대목에 눈길이 간다.

조 전 장관은 법정구속되지 않은 것을 너무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능한 검찰 독재정권 종식을 위해 맨 앞에서 싸우겠다”고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윤석열 정권 탄생에 기여한 자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것”(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라는 야권 내부의 조언도 무색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이해’받아 지지표가 꽤 나올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혹여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면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나오기 전에는 더 당당하게 각종 입법에 참여하고, 면책ㆍ불체포특권을 이용해 지금보다 더한 자기방어에 나설 게 뻔하다. 이미 황운하(민주당)ㆍ윤미향(무소속) 의원 등 형사기소됐음에도 재판과 확정판결이 늦어지면서 임기를 꽉 채우는 사례들이 있고, 수차례 허위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렸음에도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으로 당당하게 버텨온 이들이 많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법원 제공=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법원 제공=뉴스1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정치인이기 때문에 방어권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는 오히려 반대로 적용돼야 한다. 아니면 조 전 장관처럼 다른 형사재판 피고인들에게도 비슷한 기준을 대야 하지 않을까.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정구속 적용이 일반인과 달리 특권층에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지적에 “같은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다”며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정의는 형평성을 빼고 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