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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 성장통 ‘캐즘’ 앓는 K배터리…기술·공정 내실 다질 하늘이 준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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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호 09면

K배터리 비상등, 출구는 없나

이상영 교수

이상영 교수

“지금은 한국 배터리 업계가 내실을 다질 적기다.” 한국 배터리 업계의 산증인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생산량, 점유율로 대결할 것이 아니라 기술 차별화로 우위에 서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배터리 업계가 이른바 ‘죽음의 계곡’(신기술을 사업화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을 지나는 동안 기술 개발에 매진하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기차 수요 부진과 미국·일본·중국에 둘러싸인 지금은 위기이자 한국 배터리가 성장할 기회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덕에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만큼 전폭적인 기술 개발과 정부의 지원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LG화학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국내 배터리 산업에 토대를 닦은 국내 ‘배터리 1세대’ 개발자다. 유니스트(UNIST) 교수를 거쳐 지금은 연세대에서 이차전지연구센터장을 맡아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과 함께 배터리 연구의 최전선을 지휘하고 있다. 14일 이 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중국에 따라잡힌 한국 상당히 위험

현재 한국 배터리 산업을 총평한다면.
“배터리 산업의 원년 멤버 중 한 명이지만, 그 누구도 이 산업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현재 기술적인 측면에선 우리나라만큼 인정받는 나라는 없다. 지금은 모든 신산업이 겪는 ‘캐즘’(기술 혁신이 대중화로 이어지기 전 나타나는 일시적인 정체)을 겪고 있다고 본다. 성장을 위해 겪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상향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다만, 몇 년 새 배터리 산업이 우리 역량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커져 내실을 다질 여유가 없었다. 지금이 바로 신기술 개발, 공정 최적화 등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하늘이 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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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가 빠른 것은 사실 우리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처음 배터리를 개발할 때 일본에서 소재를 수입했는데, 단가만 생각하다보니 중국 소재 업체와 손을 잡아 기술을 전수해줬다. 뼈아픈 실수다. 그때도 분명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라고 했었는데 어김없이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았다. 리튬인산철(LFP)의 경우 우리는 등한시했지만 중국이 주도권을 잡는 바람에 우리가 따라가는 꼴이 돼버렸다. 한국에선 1년이 걸리는 걸 중국은 한 달이면 한다. 리튬이온의 경우도 기술력이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상당히 위험한 상태다.”
일본까지 가세하고 있다.
“일본은 배터리 종주국이지만, 일본은 전기차 연구를 막 시작하던 시절 ‘리튬이온은 절대 전기차에 들어갈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리튬이온 개발에서 뒤쳐졌으니 뒤늦게 전고체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우리를 위협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메이저 플레이어도 다 도산하지 않았나. 다만 소재 쪽은 다르다. 소재 측면에서는 여전히 일본에 알짜배기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견제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배터리 업체의 성과를 평가할 때 흔히 생산량과 시장 점유율을 지표로 사용한다. 생산량이 많으면 좋겠지만 굳이 생산량으로 1위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짜놓은 판에 들어가 같이 경쟁하는 건 어차피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생산량은 확보하되, 마진이 많이 남는 구조로 가는 게 오히려 낫다. 자동차 업계로 비유하자면, 중국산 자동차가 아닌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 제네시스 등과 같은 프리미엄을 지향하자는 뜻이다. 점유율이 낮아도 품질이 좋으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다. 다만 프리미엄 라인만 고집하라는 건 아니다. 고가·저가 라인을 함께 가져가면서도 기술력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배터리 3사의 최고경영자(CEO) 또한 점유율을 늘리기보다는 기술 차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 갈래 따로노는 R&D 일원화 절실

전고체 배터리는 ‘게임 체인저’가 될까.
“전고체에 대한 일부 오해가 존재한다. 전고체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데, 전고체는 넓은 의미의 차세대 배터리를 하나의 용어로 포장한 것이다. 배터리 개발자들의 지향점일 뿐이지 진짜 꿈의 배터리인지는 아직 모른다. 짧은 기간 내에 구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아니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목표로 삼되, 연구 여정에서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며 여러 길을 시도해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전고체보다 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정부 지원도 필요해 보인다.
“기업이 원하는 과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줬으면 한다. 지금은 대학, 출연연, 기업 간 칸막이가 있어 연구·개발(R&D) 비효율만 커지고 있다. 중국처럼 전폭적인 지원이 어렵다면, 업계 최전선에 있는 기업이 원하는 개발 과제를 발굴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술 공개와 같은 딜레마가 있을 수 있기에 대승적 결단이 필요할 거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2차전지 육성을 위한 대학 지원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똑똑한 학생들이 대거 2차전지 산업으로 유입되어야 기술 차별화가 가능하고, 국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지금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정말 이 산업이 중요하다면 정부에 ‘2차전지 특위’를 만들어서라도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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